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명옹주 (문단 편집) === [[소용 조씨|조 귀인]]의 저주 사건 === [[인조]] 사후 [[1651년]] 귀인 조씨가 [[장렬왕후]]와 [[봉림대군|효종]]을 저주한 일에 관해 여종들을 국문할 때, "효명옹주가 옷 소매 속에다 사람의 뼈가루를 담아서 대궐과 이복오라비인 [[인평대군]]의 집에다 뿌리고 흉한 물건을 궁궐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야사에는 "효명옹주는 효종이 자신을 멀리하자 시아버지(혹은 시할아버지 [[김자점]])를 왕으로, 자신은 세자빈(혹은 세손빈)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효명옹주와 남편 김세룡을 국문하라고 요청했으나, 효종은 [[김자점]]의 손자인 김세룡만 국문하였다. [[효종(조선)|효종]]은 조씨의 목숨은 빼앗았지만 그 자식들에겐 달리 유감(遺憾)이 없었고, 혈육의 정으로 최대한 목숨은 보전해주려 나름 노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