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문제 (문단 편집) ==== [[한화#s-3]]정책 ==== [include(틀:위진남북조시대 북조의 민족 및 문화정책)] [[위진남북조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정책 중 하나이다. 역사상 고조 효문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업적이다. 효문제는 '''한화(漢化)정책'''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대개혁을 시작했다. 이는 선비족이 적극적으로 한문화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펼친 이유는, [[선비족]]이 포함된 [[오호#s-2|5호]](선비, [[흉노]], [[저족|저]], [[갈족|갈]], [[강족|강]])는 관료제에 입각한 국가를 경영한 적이 없어서 나라를 세워도 금방 분열되고, 붕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진]]의 약화를 틈타 북중국을 정복할 수는 있었지만, [[문맹]]인 유목민 정복자들이 이전의 한족 왕조들처럼 정교한 관료제를 유지하기는 힘들었고, 결국 이들이 세운 왕조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다가 단명하고 말았다. 특히 북조에서는 한족에 의한 농민반란이 계속 일어났는데, 이는 유목민 출신인 지배층이 농업경제에 대한 몰이해로 의도했든지, 의도치 않았든지 간에 지나친 착취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선비족 출신의 효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정권을 안정화하기 위해 한문을 배우고 유교 및 불교의 소양을 익히게 하는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해서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 북위는 유목민족인 5호가 세운 나라 중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한화된 선비족이자 지역 군벌집단인 소위 [[관롱집단]]은 전 중국을 통일하고 당나라 시절까지 지배층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로써 500년간 선비족은 중국의 지배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선비족은 당(唐)나라 시대에 이르면 그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스스로 한인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