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자고황후 (문단 편집) === 주원장과의 혼인과 [[킹메이커]] 생활 === 1352년 21살이 되었을 때, 마수영의 양부인 [[곽자흥]]의 수하였던 주원장과 [[결혼]]했다. 주원장과 결혼한 이유는 곽자흥이 주원장에게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서 사위로 삼았다는 설과, 주원장의 능력을 질시하고 두려워하여 사위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당시 주원장은 아무것도 없는 고아인데다, 탁발승 출신이었다. 그때 고생을 많이 한데다, [[마마]]까지 앓아서 얼굴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 결혼도 정략적인 느낌이 다분했음에도 주원장-마수영 부부는 금슬이 좋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가능한 한 사람을 죽이지 말고 천하를 평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주원장은 아내의 말을 명심했다고 한다. 심지어 아내로 하여금 자기 개인 서찰을 직접 관리하게 하기도 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자녀를 낳았는데, 5남 2녀를 낳았다. 큰아들은 [[주표]][* [[건문제]]의 아버지다. 성격이 인자했지만 몸이 약해 황태자 신분으로 요절했다. 아들 [[명혜종]] 때 흥종(興宗)으로 추존했지만 동생 연왕 주체가 즉위하고 나서 의문태자로 격하됐지만 다시 추존하였다.], 넷째 아들인 주체[* 훗날 [[영락제]]이다. 명나라 개국하고 나서 연왕이라 불렀다.]를 낳았다. 황후의 양부 [[곽자흥]]은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어 특히 남편 주원장을 의심했는데, 황후의 기지 덕에 누명을 풀 수 있어 양부 곽자흥의 신임을 받게 하였다. 한 번은 곽자흥의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원장을 음해하여 감옥에 가둬두게 했다. 이 때 마씨는 가슴에 뜨거운 전병을 넣고 감옥에서 고생하는 주원장에게 직접 주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양모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서 양부 곽자흥에게 이야기하자 이를 안 곽자흥은 두 아들에게 매질을 하고, 주원장을 풀어줬다. 황후는 평소에 말린 고기를 충분히 준비하여 남편에게 제공했지만, 자신은 언제나 배부르게 먹지 않았다. 또한 수시로 병사들의 의복과 신발을 만들어 공급했으며, 주원장이 용만에서 [[진우량]]과 결전을 벌일 때에는 궁중의 모든 금은보화와 비단을 털어 군사를 위로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