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자고황후 (문단 편집) === 황후 시절 === 1368년 남편 주원장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응천부, 지금의 남경에 궁을 짓고 대명(大明)을 건국하여 황제가 되었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명나라의 초대 황후가 되었다. 마황후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검소한 생활을 하였고, 나라에 흉년이 들면 자신은 푸성귀 반찬을 먹으며 하늘에 기도하는 등 백성에 대한 사랑도 많이 줬다. 그뿐만 아니라 성격이 남을 못 믿고 다혈질적인 남편에게 항상 조언을 많이 하였다. 신하들에게 포악한 모습을 가진 [[홍무제]]였지만 젊었을 때 같이 고생하던 [[조강지처]] 마황후에게 항상 고마워해서 많이 아꼈다고 하고, 그녀의 건의에 대해서는 많이 수용했다. 마씨는 항상 식사를 검소하게 하였으며, 공주들과 후궁들과 같이 자수와 방적을 많이했고, 옷을 직접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그런 일도 많이 했다. 이러한 마황후의 행동에 후궁들은 엄청 감동했다 한다. 또한 자식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마황후가 가장 잘한 일은 신하들의 숙청에 대한 제어를 한 것이다. 남편 [[홍무제]]는 자수성가해서 나라를 건국한 황제였지만 그 속에서도 비판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신하를 숙청하는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 죽었던 신하들이 10만 명 정도였고, 숙청하는 방식이 매우 잔인했다고 한다. 이러한 숙청을 막은 사람이 바로 아내 마황후다. 그나마 마씨가 살아있을 때 이성적으로 숙청을 할 때도 있었다. 억울하게 숙청을 당하게 된 신하가 그녀를 찾아오면 마황후는 신하를 두둔하면서 안정시켰다고 한다. 그녀는 설득을 하면, 주원장도 마음을 바꾸어 신하들을 용서했으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마황후는 식음을 전폐하면서 말리기도 했다. 이런 마황후의 노력으로 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예가 태자 주표의 스승이자 대학자였던 송렴이다. 그도 죽을 뻔했는데 마 황후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호유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마 황후는 그가 누명을 쓴 것을 알고 주원장에게 간곡히 화를 풀라고 부탁했으나, 웬만하면 마 황후의 말을 듣던 주원장도 이번에는 마 황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마 황후는 태조의 수라상을 직접 들고 왔는데, 뜻밖에도 술과 고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태조가 그 까닭을 묻자 그녀는 "소첩이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송 선생을 위하여 재계(齋戒)하고자 주육(酒肉)을 올리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재계란 죽은 사람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의식인데, 당신도 술과 고기를 당분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간접적인 경고였다. 그러자 태조는 송렴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젓가락을 던지고 나가버렸다. 다음 날 그는 송렴을 사면하고 무주로 유배를 보내 목숨은 살려주었다. [* 다만 송렴은 원체 고령이었던지라 유배를 가는 중에 결국 죽고 만다.] 발이 매우 컸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큰 발 마 황후'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마 황후가 실제로 발이 컸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전족을 하지 않아서 큰 발로 여겨진 것으로 추측된다. 전족이란 성장기에 발을 천으로 강하게 매서 성장하지 못하게 하여 억지로 작은 발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상류층 여성들은 거의 반드시 이렇게 했다. 이런 작은 발은 미의 기준으로도 여겨졌기 때문에 딸들이 고통스러워해도 부모들이 억지로 시켰다고. 그러나 도적단 수장의 양녀였던 마 황후는 전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발이었고, 그래서 상류층 여성에 비교해 큰 발로 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 황후의 발이 크다고 지적하는 것은 그녀에겐 신분이 천하다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주원장과 결혼했을 때 첫날밤에는 주원장이 발이 크다고 이야기하자, "나도 당신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도 좋아하니, 당신도 나의 발을 좋아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한 일화도 있으며, 한번은 민간에서 마 황후를 큰 발이라며 비웃는 그림이 나붙었는데, 마침 암행 중이던 주원장이 이를 보고 대노하며 그림 앞에서 낄낄거리던 백성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려 하자 황후가 "제가 발이 큰 건 사실이니 그런 일로 처형하지 마시라"고 간언하여 주원장도 그들을 살려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중국에서는 복을 뜻하는 글자인 福을 쓸 때 거꾸로 쓰는 일이 있는데, 이를 '다오푸(倒福)'라고 한다. 倒福(다오푸)는 '福자가 뒤집어졌다'는 뜻인데, 이 글자가 '복이 온다' 는 뜻을 가진 '到福'와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 풍습이 마황후와 연관되었다는 야사가 있다. 어느 백성이 위에 언급한 발 크기로 황후를 조롱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원장은 집 앞에 福 글자를 거꾸로 쓴 자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마 황후는 주원장 몰래 아랫 사람들에게 지시해서 도성 내 모든 집 앞에 거꾸로 쓴 福 글자를 달아놓도록 하였다. 그래서 백성을 잡으러 출동한 황제의 부하들은 어떤 집인지 찾지 못하고 황궁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이 이야기가 백성들에게 퍼지면서, 마황후의 어진 성품에 감사하는 마음과 거꾸로 쓴"福"자가 복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서 이 풍습이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화에서 보듯 마 황후는 매우 어질고 현숙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여장부였다. 평생 주원장의 옆을 지키며 주원장에게 정확하고도 옳은 헌책을 거듭하였고, 주원장은 그런 마 황후의 이야기를 잘 따랐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