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창공원 (문단 편집) === [[조선왕릉|원소(園所)]]에서 숙영지로 === 효창공원의 역사는 [[정조(조선)|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와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가 사망하며 시작된다. 당시 정조는 이들의 묘소를 궁궐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했다. 도성 주위에 여러 후보지를 보던 중 소나무가 울창하고 한강이 보이는 언덕을 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효창공원이다. 정조는 이곳이 풍수지리적으로 좋다고 판단하여 묘소를 조성하고 이곳에 ‘효성스럽고 번성하다’라는 의미의 '효창(孝昌)'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후 [[조선]]왕조 때까지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인적이 꽤 드물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고, 묘역도 광활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이러한 효창원 분위기를 이용하여 [[일본군]]에 의해 '구용산고지'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당시 일본군은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인적이 드물다는 점을 이용해 이곳을 숙영지로 삼기도 했으며, 동시에 비밀 병참기지로도 활용하여 숙적이었던 [[독립군(한국)|독립군]] 토벌 및 소탕작전을 비밀리에 펴기도 했다. 해방 후 일본군이 사용했던 숙영지 및 병참기지는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모두 철군한 후 공식 철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