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경 (문단 편집) ==== 장강방어선의 붕괴 ==== 소연은 양간의 건의를 무시했고 양간은 머리를 흔들어대며 탄식했다. 소연은 소정덕을 평북대장군 도독경사제군사로 임명하고 단양에 주둔시켰다. 그러나 진작에 후경과 내통하던 소정덕은 [[갈대]]를 나른다는 허위 보고를 올리고 [[장강]]을 건너기 위한 큰 배를 후경에게 보냈다. 후경은 강을 순시하는 왕질의 일거일동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침 소연이 진흔을 보내 왕질과 교체해 버렸다. 후경은 왕질이 떠나고 후임 진흔이 도착하기 전의 틈을 노렸다가 10월 22일, 8천의 병사와 수백의 군마를 배에 실어 장강을 건너 채석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야 그 소식을 들은 조정은 놀랐다. 장강방어선이 붕괴되고 후경의 반란군이 건강성 코 앞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아직 건강성은 탄탄했고, 기본적인 방어대책만 가동했어도 충분히 후경을 건강성 밖에서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양나라 말기의 조정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는데, 특히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지휘해야 할 수도의 고위 관료들은 청담사상에 빠져서 [[하이힐]] 같은 나막신이나 신고, 말을 타기는커녕 말이 히히힝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말을 호랑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이 대다수였으니 제대로 방어가 이루어질 턱이 없었다. 당장 건강성 남쪽의 문을 담당했던 관리는 고작 철갑을 입은 기병 1기가 얼굴에 방어용 철갑가면을 쓴 채 돌격하는 것에 놀라서 문을 포기하고 도주하기까지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진격은 파죽지세로 이루어졌다. 10월 23일에는 판교, 10월 24일에는 진회하 남안에 이르러 건강성 내부로 확실하게 진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소정덕과 함께 건강성의 내성이자, 소연이 거주하는 황성인 대성을 포위 공격했다. 대성에 배치된 2만의 군대와 백성들은 양간과 태자 소강의 지휘에 따라 저항했으나, 긴급한 피난으로 인해 이미 초기부터 식량이 바닥난 상태였다. 후경 역시 후술하겠지만 반란군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식량이 바닥나 여기저기 약탈했으나, 수확이 없었고 왕위의 건의에 따라 협상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