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삼국시대 (문단 편집) == 명칭과 시기 == 남북국시대의 북국에 해당하는 [[발해]]가 잔존했으니 후삼국시대란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는 신라가 적어도 외교력으로는 발해를 압도하여 발해가 고려란 국호 자체를 쓰지 못하게 한 당대의 외교적 현실을 간과한 생각이다. 때문에 신라의 삼국통일 주장이 지금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까지 실질이 없진 않았다. '고구려'가 668년에 망한 이래로, 그 국호를 대놓고 다시 써도 바깥의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던 나라는 궁예의 태봉과 왕건의 고려가 처음이므로 후삼국시대라고 구분해도 어색하진 않다. 또한 냉정하게 발해가 통일신라에 비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낮고 거란과의 전쟁에 치중한 나머지 이 시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이질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기적으로는 가장 넓게 잡아보면 서기 889년~936년으로, 889년은 [[원종·애노의 난]]이 일어난 해이고, 936년은 [[고려]]가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에 승리해 통일을 이룩한 해이다.[* 그 외에도 견훤이 할거한 892년 혹은 후백제가 공식적으로 성립한 900년을 후삼국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 또한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