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스카를 (문단 편집) == 역사 == 노르드어로 húskarl은 hús(House/집) + karl(free man/자유민)이 합쳐진 단어로, karl은 소작인(농노)가 아닌 자유민을 뜻하고 이것이 집안에 있으니 "집안의 (소작민이 아닌) 전사" 라는 의미가 된다. 기본적으로 노르드인 사회에서 자유민(평민)이란 자기 집에서 자기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하고,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는 사람이다. 즉, 농사를 짓든 목축이나 어업을 하든, 대장간 등 공방을 열든, 약탈과 무역&탐험을 하든, 노르드 사회의 산업 대부분은 가족의 인력과 재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혈연공동체인 가족은 곧 노르드 사회의 기초적인 생활-생산 단위로 기능하였다. 물론 이들의 가족 개념은 현대 기준으로는 일족이라 해야 할 대가족이고, 이 일족의 연합체가 바로 노르드 부족 사회의 부족들이다. 하지만 노르드 사회가 발전하여 고도화하면서 유력자들(족장이나 영주, 야를)이 생겨나고, 이들 세력자들이 자기 가족(일족)만으로는 경영하기 힘든 큰 재산을 축적하면서 그 집(가족이나 일족, 동시에 그 재산인 농장이나 장원 등)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집에서 일하는 더부살이나 고용인, 소작농 등의 새로운 계층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들은 일단 그 집의 일원이 아니면서 고용된 처지인데다 특히 가족(씨족)이 사회의 기반이던 시대에 남의 집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씨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또는 의지할 수 있는 씨족이 없는) 처지였으므로 자유민(카를)보다 한 단계 낮은 신분인 예속민으로 여겨졌던 것이다.(단, 예속민은 '매매의 대상인' 노예와는 다르다.) 하지만 이처럼 남의 집(세력가의 집)에서 일하면서도 예속민이 아닌 자유민으로 인정받고 대우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직업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무사들이었다. 일단 이들이 가진 전투기술이 당대 기준으로는 매우 고급기술이기도 했거니와,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 노르드 사회에서도 무장하고 전투에 나서는 것은 자유민 이상의 신분을 가진 자들의 권리였으며, 특히 상무성이 강한 노르드 사회에서 뛰어난 전사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사를 고용했는데, 이들을 예속민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우하다가 무사들이 화내서 내 목을 따러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후스카를'(집 안의 자유민)이 전문 전사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 것이다. 이들은 주군과는 쌍방의 계약으로 묶인 관계였으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영주에게 고용되거나 계약기간이 연장되었다. [[데인]]족의 [[크누트 대왕]]이 [[영국]]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 영국에도 이 [[개념]]이 전파되어 왕이나 부족장을 지키는 [[친위대|근위병]]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풍부한 전투경험과 중무장을 갖춘 정예병이였으며, 대략 2,000 ~ 3,000명 가량의 허스칼이 영국에 존재하였다. [[노르만 정복]] 시기 결정적 전투였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도 [[해럴드 1세]]의 후스카를이 참전하였다. 그러나 차츰 노르드 세계가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기독교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군사문화도 보병 중심에서 기병 중심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옛 후스카를의 지위는 [[기사(역사)|기사]]들에게 넘어갔으며, 노르드로부터 후스카를 제도를 받아들였던 영국도 정복자 [[노르만]]인에 의해 대륙 군사문화가 이식되면서 후스카를도 기사들로 대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