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에 (문단 편집) == 역사 == 일찍이 [[삼국지]]에도 [[삼국지/지명|등장하는 도시]]로 [[교주]]에 소속되어 [[후한]] 최남단인 일남(日南)군 일대에 속했다. 이후 참파인들이 거주하다가 14세기에 베트남 왕조의 세력권으로 들어왔다. 응우옌 가문의 주 본거지로 옛 이름은 푸쑤언(Phú Xuân, 富春)이었고,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완조]])의 수도였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시기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인 [[프랑스령 안남|중부(안남)]]의 수도였고[* 북부(통킹)의 수도는 하노이였고 남부(코친차이나)의 수도는 사이공(현 호치민 시)이었다] 이전에 수도 기능을 하던 구시가지 외에 신시가지가 생겨나는 등 발전했다. [[베트남 공화국]] 시대에는 직할시이자 [[휴전선(베트남)|베트남 군사분계선]]에서 고작 100km 떨어져 있는 최북단 접경도시이기도 했다.[*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또한 응오딘지엠 정권 당시 반정부 시위가 아주 격렬하게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며, 그 때문인지 소신공양을 한 스님인 틱광둑의 심장이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베트남 군부와 불교도가 연합하여 일으킨 봉기가 발생한 곳이기도 하며, 1966년 당시 응우옌반티우와 응우옌까오끼가 병력을 보내 봉기한 남베트남군을 진압한 곳이기도 하다.[[https://en.wikipedia.org/wiki/Buddhist_Uprising|#]]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MACV([[베트남 전쟁/미군|주베트남 미군]]사령부)와 [[베트남 공화국군|남베트남군]]의 1사단 본부가 위치한 곳이었고, [[1968년]] [[구정 공세]] 때는 베트콩과 베트민군이 1개월간이나 시를 장악하여 저항했다. 주로 전투는 북쪽의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 의해 [[후에 대학살]]이 일어난 도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대규모 학살로 불리는 후에 대학살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에 의해 학자, 지식인, 정치인, 공무원을 포함한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 당한 사건이며 그 희생자는 최소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달한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인민재판#s-3.3|인민재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전투에 투입된 [[미 해병대]]가 시내 대부분을 탈환했을 때에도 겹겹으로 방어선을 만들면서 결사항전했기에 미군은 B-52를 포함한 대규모 융단폭격과 해군의 함포사격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 급격히 증가했다. 그 때문에 [[노엄 촘스키]]의 경우 대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베트민군이 아닌 미군의 화력에 의해 발생했다고 여러 저서들에서 주장했을 정도[* 오히려 이 경우가 후에에서의 민간인 사망자 대다수라는 얘기도 있다. 타운센드 후프스 소령은 이 현장을 돌아보며, 최소 2,000~3,000명 이상의 민간인 시신이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및 잔해속에 나뒹굴고 있다 말했다. PBS 베트남 전쟁 다큐멘터리 또한 최소 6,000명 정도의 민간인이 이 막강한 화력에 의해 죽었다고 언급했다. 생각해보면, 도시 75% 이상이 미군의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파괴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민간인 학살은 상당히 현실성 있는 얘기다. 인구 밀집 지역에 무차별 화력공세를 미국이 퍼부은 것은 사실이니.]. 이때 미군의 무차별 함포사격으로 황제가 머물던 서양식 궁전 건중루를 비롯한 후에 황궁의 여러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90년대부터 베트남 정부에서 복원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결국 미 해병대의 치열한 혈전을 치른 끝에 베트민군이 물러나게 되고[* 이때 활약한 것이 [[M50 온토스]]인데, [[M48 패튼]] 전차보다 차체가 작아 시가지에서 원활한 기동이 수월하였고 106mm 무반동포 6문의 화력으로 베트민군의 진지등을 파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병대원들이 많이 선호했다고 한다.] 1973년 이후 미군이 철수하고 남베트남과의 휴전협정이 파기되면서 1975년 북베트남이 다시 점령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