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산 (문단 편집) == 인문 역사 == 전통적으로 신토에서 영봉(霊峰), 즉 신이 깃든다고 전해지는 신성한 산으로 대접받았으나, 고대에 그 격은 지금보다는 낮았던 듯하다. 721년에 완성된 히타치국풍토기(常陸国風土記)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옛날 조상신께서 신들이 많은 곳을 다니시다가 스루가의 후지산에 도착하셨다. 해가 저물자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후지산신은 "추수제(新嘗祭)를 지내느라 금기를 지키는 중입니다. 오늘만은 양해해주십시오. 머물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였다. 조상신은 원망하며 욕하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너의 조상인데 어찌 머물지 못하게 하느냐. 네가 사는 산은 살아있는 한 겨울에도 여름에도 눈이 내리고 서리가 끼며 추위가 덮쳐서, 사람들이 산에 오르지 않아 음식을 바치지도 않으리라." > >이번에는 쓰쿠바산(筑波山)에 가셔서 부탁하시자, 쓰쿠바산신은 "오늘밤에 추수제를 하는 중입니다만, 조상님을 기분 상하게 해드릴 수는 없군요." 하면서 대접하여 모셨다. 그러자 조상신은 기뻐하며 축복의 노래를 부르셨다. > >"사랑스럽구나, 후손아. 높게 섰는가, 신령의 궁전이여. 하늘과 땅, 해와 달이 무궁하듯이 사람들이 이 신성한 산에 올라 축하하리라. 음식은 풍부하고 우리 일족은 언제까지나 번성하여 즐거움이 무궁하리라." > >이런 이유로 후지산은 눈이 와서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쓰쿠바산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노래하고 춤추며 먹고 마시는 것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쓰쿠바산은 오늘날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에 있는 해발 877m짜리 산이다. 히타치국풍토기에서는 후지산의 위엄이나 위용으로 묘사하는 '높은 산 정상에 눈이 쌓인 모습'을 과거에는 오히려 오르기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저주로 보고, 후지산보다 한참 낮은 쓰쿠바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축복이라고 여겼다. 물론 이것은 8세기 히타치 지방의 인식을 반영한 기록이겠지만, 고대에는 지금보다는 후지산을 신성하게 여기는 정도가 낮았다는 한 가지 증거라 하겠다. 윗 문단에 나온 내용은 사실 오해로, 후지산은 오래전부터 최고의 영산 중 하나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후지 산은 현재의 시즈오카 현, 과거의 스루가국 지역의 신앙으로 취급되었기에 쓰쿠바 산을 모시는 히타치 지역에서 후지산 대신 쓰쿠바산이 최고라는 인식이 생겨 저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저것만 보고 고대에 후지산의 위상이 낮았다고 판단해선 곤란하다. 센겐 신사에서 모시는 센겐 대신[* 일반적으로 기기신화에 등장하는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를 뜻한다.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의 몸에서 타오른 불에 타죽었다는 신화가 전해지는데, 후지 신앙에서 그녀는 불을 꺼트린 물의 신으로 대접받는다] 이 후지산의 신령이다. 센겐 신사[*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에 있는 센겐 대사는 센겐 신사의 총본궁이다]는 이런 이유로 후지산을 모시는 후지신앙의 중심지로 취급된다. 후지 신앙에 대한 흔적은 무려 조몬 시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전국적으로 폭넓게 퍼진 것은 화산활동이 활발해진 나라 시대 말로 보인다. 적어도 헤이안 시대까지는 전국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신앙이었다. 이렇듯 후지산에 대한 신앙이 생긴 것은 후지산이 활화산이라 화산활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수험도]]에서 유래한 후지강(富士講)이라는 종교단체가 [[에도 시대]]에 후지산 숭배인식을 퍼트렸다. 물론 그 이전에도 후지산은 신성한 산으로 숭배받기는 했지만, 후지강이 이를 더욱 강화하고 대중화했다. 후지강은 후지산을 [[여신]]으로 간주했다. 과거 일본에서는 '후지산에 여자가 오르면 재앙이 닥친다.'고 오르지 못하게 했는데, 후지강은 '여신이 계신 산에 왜 여자가 못 오르냐?'면서 지속적으로 금기에 도전하여, 이는 점차 금기가 풀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비단 후지산만이 아니라 신성한 산이나 장소에 여자가 못 가게 하는 관습이 과거에는 많았고, 아직도 일부는 관습이 유지된다. 진언종의 성지 고야산도 19세기까지는 여자가 들어가지 못했고, [[교토부]] [[아야베시]]에 있는 미센산(弥仙山)도 수험도의 성지로 19세기까지는 여자의 입산이 금지되었다. 1901년에 [[오모토]]의 개조 데구치 나오가 미센산에 짱박혔다가 인근 주민들에게 들킨 적이 있는데, 법적으로는 금기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아 주민들은 나오에게 욕을 퍼붓고 경찰서에 데려갔을 정도.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오키노시마(沖ノ島)는 아직도 여자는 섬에 들어갈 수 없는 관습을 유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