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산 (문단 편집) == 관광 == 위치는 일본 [[혼슈]]의 [[야마나시현]]과 [[시즈오카현]] 사이로,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도쿄도]]나 [[가나가와현]][* 특히 [[에노시마]]에서의 경관이 유명하다. 에노시마의 풍경을 담은 고미술품 등을 보면 후지산이 그려진 작품이 상당히 많다.] 등은 물론이고 100 km 이상 떨어진 [[이바라키현]]이나 [[나가노현]]의 높은 곳에서도 보인다. 야마나시, 시즈오카 두 현의 경계를 걸치고 있어, 서로 후지산이 자기네 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즈오카현에서는 경치 문단에 나온 사진처럼 남쪽에서 본 후지산을 앞쪽, 북쪽에서 본 후지산을 뒤쪽이라 하고, 야마나시현에서는 그 반대로 북쪽에서 본 [[후지고코]](富士五湖)와 함께 보이는 후지산을 앞쪽이라고 한다고. 일본에서는 신성한 산에 종교적 의미로 오를 경우 [[등산]] 대신 '등배(登拜)'라는 말을 쓰는데, 후지산도 등배의 대상이었다. 한국어에서도 사찰에 '참배'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비슷한 경우라고 하겠다. 세계 각지의 명산들에 비해 경사가 심하지 않고 등산로 관리가 잘 된 편이라서 국민 대다수가 오를 수 있어 이른바 '국민 산'으로 통한다. 유료도로인 스바루 라인을 이용하면 5고메(五合目, 5부 능선) 주차장까지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스바루 라인은 기본적으로 상시 개방이긴 하나, 날씨나 도로 상황에 따라 중간까지만 올라갈 수 있거나 아예 입구부터 전면 통제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주로 후지산 아래까지 눈이 내려 쌓이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이런 상황이 많이 생긴다. 어디까지 도로를 개방하는지는 그날그날 다른데 [[https://tollgate.securesite.jp/wp/road/subaruline/|후지 스바루 라인 홈페이지]]에서 매일매일의 도로 개방 상황을 업데이트 해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가볼 생각이라면 참고하자. 다만 겨울에는 눈 때문에 5고메 주차장까지 개방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5고메는 [[해발고도]]로 따지면 대략 2,300m 정도 되는 지점으로,[* [[대한민국]](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 [[한라산]] 정상보다도 높은 것이다.] 설령 등반을 하지 않고 5고메까지 차 타고만 왔다가 돌아갈 생각일지라도 옷을 잘 챙겨입도록 하자. 차 타고 5고메까지 올라왔다면 주차장에서 내리는 순간 산 아랫동네와 날씨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고메(5부 능선)까지는 포장도로이지만,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등산로이므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5고메에서부터 출발하면 당일치기 등반도 가능하다. 물론 5고메가 아니라 아예 처음(산 밑)부터 올라오는 등산로도 있다. 등산로는 [[여름]]인 7월과 8월에만 개방한다. 해마다 약간씩 개방 시기가 달라지지만 보통 7월 초에 개방하기 시작해서 9월 초(늦어도 9월 중순 이전)에 닫는다. 후지산의 높이가 워낙 높아서 7~8월이 아니면 정상까지 갔을 때 날씨가 너무 춥기 때문에, 정상 부근의 기온이 그나마 영상으로 올라오는 한여름(7~8월)에만 등반을 허용한다. 사실 기온도 기온이지만 [[눈(날씨)|눈]] 문제도 있다. 후지산 등산로 사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후지산은 6고메(해발 2,500m) 위로는 정말 나무 한 그루 없이 흙과 화산재로만 덮인 급경사를 고갯길 올라가듯이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등산로를 구분짓는 선이 있긴 한데 난간도 아니고 그냥 철제사슬이나 로프를 매달아 구분해놓은 것에 불과해서 상당히 위험하다. 나무가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나무가 없으니 등산로 옆으로 빠지면 그냥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것이다. 눈이 쌓여있으면 등산객이 미끄러질 확률이 높으니 더 위험하다. 정상 부근까지 눈이 녹는 유일한 시기가 7~8월이고 그래서 이때만 등반을 허용하는 것도 있다. 만약 등반에 도전할 생각이라면 준비를 잘 하는 것이 좋다. 우선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되, 반드시 외투를 챙긴다. 설령 5고메(5부 능선)[* 해발 2,300m 부근]가 [[여름]] 날씨일지라도 8고메(8부 능선)[* 해발 3,300m 부근]부터는 [[겨울]] 날씨가 된다. 등산 스틱이 없으면 5고메에서 금강장(金鋼杖)[* [[일본어]]로는 콘고즈에(こんごうづえ)라고 읽는다. 원래는 [[불교]] 수행자나 [[슈겐도|슈겐자]] 등이 여행하거나 순례할 때 쓰는 나무 지팡이. [[시코쿠]] 88 사찰순례에서도 사람들이 금강장을 들고 다닌다. 원래는 [[금강저]] 중 독고저의 형상을 따서 만들었기 때문에 금강장이라고 이름한다고 한다.]이라는 나무 지팡이를 1천 엔 내외로 파니 꼭 하나 사가자.[* 각 산장과 정상에서 300엔 남짓 돈을 내면 5고메에서 파는 금강장에 인두로 지져 스템프를 찍어주는데, 정상에서만이라도 스템프를 하나 찍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무가 없어서 햇볕을 막아줄 곳이 없고 햇볕도 무척 세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자. 눈에 무리를 주는 자외선도 상당하니 선글라스도 가져가는 걸 추천한다. 먹거리는 작으면서도 열량 높은 [[초콜릿]]이나 칼로리메이트 등이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120엔 정도 하는 이온음료(500 ml)가 5고메 자판기에서는 200엔, 7고메 산장에서는 500엔에 판매된다. 생수의 가격도 동일. 등반은 아침 일찍(오전 6시 정도) 시작해야 일몰 전에 하산하기 편하다. 8고메 이상부터는 [[고산병]] 증상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할 것. 그리고 100엔짜리 동전을 여러 개 준비하도록 하자. 이유는 [[화장실]] 이용료가 무려 200엔이다! 이용자가 돈을 내는지 안 내는지 사람이 직접 감시하는 화장실도 있으나, 덩그러니 나무상자만 갖다놓고 돈 넣으라고 써놓은 화장실도 있다.[* 후지산 정상 화장실은 감시 안 함.] 우천 시 몸이 젖어 추울 때 화장실에 들어가서 휴식을 하기 좋다. 굳이 화장실에서 쉬는 이유는 산장은 휴식이 불가하고 숙박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보다 건조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잘 안 가게 될 것이다. 공기가 건조해서 목이 엄청 마르므로 물을 많이 챙겨가고, 그래도 부족할 수 있으니 돈을 넉넉히 챙겨가자. 차편과 숙박비, 그리고 기타 비용을 합쳐 15만 원 정도는 경비를 확보해야 든든하게 등반할 수 있다. 후지산 정상은 상당히 춥다. 정상 부근에 있는 기상관측소 기록에 따르면 1월 평균기온 -18.2℃, 8월 평균기온 6.4℃로 여름을 제외하면 항상 영하권이라고 보면 되며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간다. 극단적으로는 1981년 2월에 '''-38℃'''를 기록한 적도 있다. 히타치국풍토기에 기록된 "네가 사는 산(후지산)은 살아있는 한 겨울에도 여름에도 눈이 내리고 서리가 끼며 추위가 덮치리라." 하는 구절대로이다. 일본 전역에 있는 센겐 신사(浅間神社)는 후지산신을 주신으로 모신다. 센겐 신사들은 후지산을 센겐(浅間) 님, 혹은 센겐 대신(大神)이라고 부르며 신앙대상으로 삼는데, 센겐이란 말이 [[화산]]을 뜻한다고 한다. 메이지 시기 신불분리령 이후로는 [[국가신토]]에 발맞춰, 센겐 신을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등장하는)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木花之佐久夜毘売) 여신과 동일시하였다. 센겐 신사들의 본부는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富士宮市)에 있는 후지산혼구센겐 대사(富士山本宮浅間大社, 이하 센겐 대사). 후지산 꼭대기에도 센겐 대사에서 관리하는 신사들이 있다. 후지노미야 루트 등산로의 끝에는 '후지산정상 센겐 대사 오쿠미야(富士山頂上浅間大社奥宮, 이하 오쿠미야)'가 있다. 원래는 후지산 코보사(興法寺)가 있던 자리지만, [[메이지 유신]] 시절 신불분리령으로 사찰이 사라지자 그 터에 센겐 대사가 오쿠미야를 세웠다. 센겐 대사 측도 오쿠미야를 말사가 아니라 또 다른 본사로 간주하는 듯하다. 오쿠미야 경내는 후지산 내에서도 특별보호지구로 따로 보호받는다는 듯. 은명수(銀明水)라고 불리는 약수가 근처에서 나와, 사람들이 받아가려고 한다. 요시다구치 루트의 끝에는 쿠스시 신사(久須志神社)가 있는데 오쿠미야의 말사지만 현판에는 '후지산정상 오쿠미야(富士山頂上奥宮)'라고 써 있다. 원래 쿠스시 신사에는 야쿠시지(藥師寺)라 하여 [[약사여래]]를 모시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약사여래의 약사(藥師/薬師)를 일본식으로 읽으면 야쿠시. 그런데 메이지 시기에 신불분리령으로 (오쿠미야 터에 있던 코보사와 마찬가지로) 야쿠시사가 해체되자, 센겐 대사가 그 터에 또다시 신사를 세웠다. '야쿠시사'라는 본래의 이름에서 야쿠(藥/薬)를 '쿠스리'라고도 읽을 수 있으므로 여기서 쿠스(久須)를 따고, 시(師)와 발음이 같은 시(志)를 붙여 쿠스시 신사(久須志神社)라 이름을 지었다. 모시는 신은 오나무치(大穴牟遅, [[오오쿠니누시|오쿠니누시]])와 [[스쿠나히코나]]. 두 신은 일본신화에서는 '국토를 만든 신'으로도 유명하고, 의약의 신이기도 하다. [[약사여래]]를 모시던 절 터에 역시 의약의 신을 모신 것이다. 쿠스시 신사 북서쪽 가까이에는 금명수(金明水), 오쿠미야 가까이에는 은명수(銀明水)라는 약수가 나온다. 둘 다 각 신사에서 신찬에 올리는 데 쓰는데, 영험한 약수라 하여 등산객들이 받아가려고 한다. 신사에서 돈 받고 판다는 듯. 전설에 따르면 옛날 [[다이다라봇치]]라는 거인이 하룻밤 만에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을 만들겠다고 땅을 파서 흙을 쌓아올렸는데, 마지막 한 삽을 퍼올리려고 할 때 닭이 울어 그만 삽에서 흙을 흘렸다. 그때 쌓은 산이 후지산이고 신령이 흙을 푼 구덩이가 [[비와 호]]이며, 마지막에 흘린 흙이 비와 호 옆에 있는 미카미산(三上山), 즉 오미후지(近江富士)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흙을 못 쌓았기 때문에 후지산 꼭대기가 평평해졌다. 다이다라봇치는 그 한 삽이 아까워서 비와 호의 물을 후지산으로 보냈는데, 그 호숫물이 금명수와 은명수라고 한다. 그리고 후지산 정상 가까이가 비와 호와 연결되어 호숫물이 금명수ㆍ은명수로 흘러나온다고. 일본 다도계에서는 오쿠미야에서 나오는 은명수가 유명하다고 한다. 과거에 약사여래를 모시는 사찰이 있던 것도 금명수ㆍ은명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나온다고 보기도 한다. 근처에 [[자살]] 명소 [[주카이 숲]]이 있다. 단지 마경으로만이 아니라 물도 깨끗하기로 유명해서 이 곳에서 채취한 물이 [[생수]]로 팔리기도 한다. 일본에는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바보, 두 번 오른 사람 또한 바보(富士山に一度も登らぬ馬鹿、二度登る馬鹿)."라는 [[속담]]이 있다.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사랑하는 마음과, 막상 올라가 보면 참 별 거 없는, 과대평가가 심한 곳이란 이중적인 뜻이 있다. [[화산]]은 토양이 식생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참 휑해서 가까이서 보는 풍경은 명성에 비해 별 것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멀리서 보는 게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평이 대다수. [[에도 시대]] 중엽, 신성한 산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등산할 수 없는 여자나 몸이 약한 노인, 아이 등이 대리참배할 수 있도록 후지즈카(富士塚)라는 조그만 언덕을 만들기도 했다. 후지강 개조의 제자 타카다 토시로(高田藤四郎)가 남녀노소 후지산을 참배할 수 있도록 1780년 (오늘날 도쿄에 있는) 미즈이나리(水稲荷) 신사에 후지즈카를 만든 데서 시작하였다.[* 토야마번(富山藩: 오늘날 [[토야마시|토야마시]] 일대)의 번주 마에다 마사토시(前田正甫)가 1702년 큰 정원을 만들면서 안에 후지산을 본딴 조산(造山)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원 조경의 일부였을 뿐이므로 후지신앙의 일부인 후지즈카와는 차이가 있다. 이 조산은 이소베후지(磯部富士)라고 불렸으나 마사토시가 죽은 이후 관리가 되지 않아 이리저리 훼손되다가 1957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조산(造山)이다. 후지즈카는 대부분 신사의 경내에 있는데, 특히 (후지산신령을 제신으로 모시는) 센겐신사에 소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센겐신사가 아닌 신사에 후지즈카가 있는 경우 또한 상당하다. 현존하는 후지즈카는 오래되어 보아야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조성한 것이다. 몇몇 후지즈카는 일본의 중요유형민속문화재, 또는 각 지자체의 유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대에도 따로 후지즈카를 조성하기도 한다. 후지즈카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높이가 8-9 m 정도쯤 되면 큰 편이고 15 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후지즈카의 크기는 높이만이 아니라 조산의 지름까지 따지기 때문에 높이와 크기가 정 비례하지는 않는다.] 작은 것은 높이가 고작 성인의 허리춤 정도에 불과하다. 어떤 후지즈카는 단순히 산 모양으로 흙과 돌 무더기를 쌓았을 뿐이지만, 어떤 후지즈카는 후지산에 있는 신사들이나 유명한 지역, 현재는 출입이 불가능한 곳 따위를 후지산에서 가지고 온 돌과 흙으로 제법 상세하게 재현하는 등 각양각색이다. 이런 후지즈카는 간토 지역에만 수백 곳이 넘는다고 한다. 신사에서 관리하는 후지즈카는 평상시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하다가 신사 측이 정한 특별한 날에만 '산 열기(山開き)'라 하여 들어가도록 허락하기도 한다. 후지산에 오르는 것을 등배(登拜)라 부르듯, 후지즈카에 오르는 것 또한 등배라 부르기도 한다. 신사들은 후지즈카의 꼭대기에 오르면 후자산 쪽을 향해 기도하라고 당부한다. 2024년 7월 1일부터 야마나시현에서 등산한 사람은 1인 2,000엔의 통행료의 지불 가진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40304/k10014379141000.html|#]]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가나가와현]] [[이세하라시]]에 있는 다이센산(大山)[* 훈독으로 오야마라고도 부른다. [[이세하라시]](伊勢原市), [[아츠기시]](厚木市), 하다노시(秦野市) 사이에 있는 해발 1252 m짜리 산. 기원전 [[조몬 시대]] 제사용 토기가 산 정상에서 발견되는 등 유서 깊은 성산(聖山)인데, 아후리산(阿夫利, 雨降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산을 신앙대상으로 삼는 오야마아후리신사(大山阿夫利神社)가 있는데, 오랫동안 일본불교와 습합되어 적어도 8세기부터는 '석존대권현石尊大権現 오야마사大山寺'라고 불리며 [[부동명왕]]을 모시는 절이 되었다. 그러다가 1868년 폐불훼석(廃仏毀釈) 때 불교와 분리되어 오야마사는 폐사되고 신토시설로 천수백여 년 만에 거듭났다.]과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후지산에 오른 사람은 오야마산에도 올라야 하고, 오야마산에 오른 사람은 후지산에도 올라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서구인으로서 후지산을 첫 등반한 사람은 초대 주일 영국 공사로 재직한 [[https://ko.wikipedia.org/wiki/%EB%9F%AC%EB%93%9C%ED%8D%BC%EB%93%9C_%EC%98%AC%EC%BD%95|러더퍼드 올코크]](1809-1907)이다. 그는 1860년 9월, 영국 외교관으로서 받은 특권을 이용하여 (본래라면 금지되었을) 후지산 등산을 하였다. 러더퍼드가 후지산 밑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일행이 거의 다이묘 행렬 수준이었다고 한다. 중간에 숙박을 했는데 오유(大湯) 간헐천의 뜨거운 물 때문에 러더퍼드가 기르던 [[스코티쉬 테리어]] 한 마리가 죽는 사고가 있었다. 죽은 개를 마을 사람들이 꽤 정성껏 묻어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러더퍼드는 후지산을 거창하게 등산하고 돌아왔지만, 서양인이 함부로 후지산에 올랐다고 하여 [[존황양이]]를 따르는 무사들이 분노했다. 그래서 1861년 1월에 양이파 무사들이 습격하여 주일 미국 공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던 헨리 휴스켄(Henry Heusken)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헨리 휴스켄의 묘가 도쿄 미나토구 코린사(光林寺)에 지금도 있다. 묘비 자체는 일본식인데 비면에 십자가와 영어 문장을 새겨 눈에 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