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폐제(유송) (문단 편집) === 잔혹성 === 문제는, 유욱이 이런 식으로 자기가 만든 연장들로 나무나 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썰고, 분해하며 노는 [[쾌락살인]]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 거기에 유욱은 황제 즉위 초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태후와 태비는 물론이고 여러 대신들을 무서워해서 그들에게 멋대로 굴지 못했지만,[* 다만 이럼에도 유욱은 어릴 적부터 불길한 조짐이 보였는데, 인간에 대한 폭행을 즐겨 [[명제(유송)|아버지]]랑 주위의 걱정을 한 몸에 샀다고 한다. 참고로 송 명제도 아들만큼은 아니었어도 매우 음탕하고 잔혹한 폭군이었는데 그런 폭군도 아들의 모습을 보고 걱정할 정도였으니 어린 유욱이 얼마나 못된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심지어 이조차 '''본색을 드러내기 전의 모습이었으니...'''] [[관례|원복(元服)]]을 마친 12세 무렵부터는 안팎에서 통제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절제력이 완전히 결여된 모습을 보였는데, 수레와 두세명의 기병들을 데리고 궁성 밖 10~20리에 있는 시장에 난입하여 상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거기에 476년 7월에 [[유경소]]가 일으킨 반란이 진압되자 유욱은 더욱 난폭해져, 하루도 빠짐없이 창과 몽둥이를 든 부하들을 대동하여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짧은 바지 차림으로 밖에 나가 '저녁에 나가면 새벽에 돌아오고, 새벽에 나가면 해질 무렵에 돌아왔다'고 하며, 수도 건강의 길가에서 유욱과 마주친 생명체들은 단 하나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유욱이 이런 짓을 하루에 수십 차례나 하다 보니까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상인들은 물건을 팔지 않았고, 길에는 사람들의 인적이 끊겼으며, 사람들은 날카로운 무기를 항상 자신의 곁에 두었고, 작은 것이라도 뜻을 거스른 것이 있으면 즉시 죽여서 '''갈랐다고 한다.''' 거기에 이 소년은 '''[[쾌락살인|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몹시 슬픈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았으니]],''' 궁궐 안의 사람들은 근심과 두려움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먹거나 숨을 쉬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477년 6월 22일에 산기상시 두윤문, 사도부의 좌장사 심발, 유격장군 손초[* 아래의 각주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강제로 배를 갈렸다고 와전된 그 사람이다. 차하르족 출신의 귀화인이었다.]가 반란을 모의했다는 보고가 오자 유욱은 호위하는 무사들을 대동하고 직접 세 사람의 집에 엄습해 이들을 모두 손수 죽인 것도 모자라 톱으로 썰고 해부하였는데, 한술 더 떠서 유욱은 [[연좌제|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이런 짓을 똑같이 했고,]] 심지어 '''젖먹이 아기'''까지도 유욱의 악행을 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심발은 상을 당했던 상황이었는데, 호위 무사들이 도착하자 유욱은 칼을 휘두르며 홀로 심발에게 왔고, 심발은 황제의 뺨을 손으로 때리고 '''너의 죄는 [[걸왕|걸]][[제신|주]]를 뛰어넘는 것이니 도륙되는 것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을 남긴 후 살해당했다. 거기다 유욱은 이 잔혹한 악행 직후에 반역자 숙청 성공을 기념하는 의미로 죄수들을 대거 사면했다고 한다. 본래 전근대시대에는 군주 본인이나 그 배우자 및 자녀가 병을 완치했다거나, 적군이나 반란군을 토벌하는 등의 경사에는 죄인들을 사면하는 일이 잦긴 했다. 하지만 후폐제의 경우는 그냥 죄없는 사람의 일가족을 도륙내고는, 이를 거국적인 경사랍시고 이런 일을 벌였다. 심지어 이상의 내용들은 야사가 아니라, '''[[자치통감]]에 기록된 엄연한 정사의 내용이다.''' 거기다가 유욱은 거기에 항상 쇠몽둥이를 옆에 끼고 살았는데 매일 그 쇠몽둥이로 사람을 패서 죽여야 밥을 먹고 잠에 들었다고 하며, 시체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는 기뻐했고, 목격자 중 살인 광경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자신의 부하라도 손수 긴 창으로 찔러 죽였으며, 모반을 꾀한 죄목으로 잡혀온 죄수들을 직접 살해한 후 [[능지형]]에 처하거나, 심지어 불심이 깊으면 극락에 갈 수 있단 것을 증명해 보라며 [[승려]]를 묶어서 몸을 해체한 후 죽을 때까지 끌고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유욱은 '''매일매일 10명 이상을''' 죽였다고 한다.[* 다만, 차하르족 출신인 손초라는 사람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나자 산 채로 배를 갈라 속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확인 결과 마늘은 먹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일화와 심발의 살해가 심발의 집에 있다는 많은 보물을 약탈하기 위해서였다는 일화는 전술한 내용이 과장 내지는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태비는 그런 유욱의 태도에 경악하여 여러 번 훈계를 했는데, 유욱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반성조차 하지 않은 채 '''[[패륜|친어머니에게 독주를 먹여 죽이고자 했으나]]''' 좌우에서 만류하여 그만뒀다고 한다. 유욱이 받아들였다는 충고의 내용도 경악스러운데, 대략 "태비가 죽으면 폐하는 복잡한 상례를 치러야만 합니다. '''그러면 놀러 나갈 시간이 없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유욱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추정된다. 실제로 공감능력이나 도덕개념이 아예 결여된 사이코패스들에게 사회적 도덕 관념을 교육할 때, '''도덕 개념을 어겼을 때 본인이 사회적으로 받는 불이익'''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다.]. 그런데도 유욱은 밤에 잘 때에는 다음 아침이 오지 않을까봐 두려워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실 그의 부친 명제 유욱도 이와 비슷한 일로 전폐제에게 살아난 일이 있었는데, 전폐제의 첫 아기가 태어날때가 다가오자 기념으로 유욱을 죽이려고 하다가, 다른 삼촌이자 유욱의 이복동생 유휴인이 전폐제에게 '''아직 황자께서 태어나시지 않았으니 태어난 뒤에 죽이셔야 의미가 있을 것이옵니다'''라고 설득하여 안 죽이고 넘어갔었다. 살아서 풀려나온 유욱이 이후 사람을 시켜 전폐제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