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흉노 (문단 편집) == 개요 == '''흉노'''(匈奴)는 [[상고사|상고시대]]로부터 [[오호십육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했던 [[유목민]] 집단 및 이들이 세운 국가의 이름이다. '''[[동아시아사]] 최초의 [[유목 제국]]이다'''.[* 유라시아 초원 서쪽에서는 이미 최초의 유목제국 [[스키타이]]가 활동했고 서역의 역사서에 기록되었다.] 이 시절 끊임없이 중화권 국가와 치고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첫 등장은 기원전 4세기 말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부터이고, 이후 [[전한|한(漢)]]대에 이르러서는 북아시아 최강의 유목 국가로 성장했다. 건조한 [[초원]]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 현재의 중국 북부, [[몽골 고원]]에서부터 러시아 남쪽에까지 달하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그리고 현재 [[중국]]의 [[내몽골]], [[간쑤성]], [[토하리스탄#s-3|토하리스탄]]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사마천]]의 사서 《[[사기(역사책)|사기]]》에는 [[하나라]]의 후손으로 [[서주]]를 밀어버린 [[훈육]]과 [[험윤]]이 이들의 조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 이전의 북방 이민족들은 제대로 된 유목민이 아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성과로 보면, 이후의 유목민족들처럼 제대로 된 유목문화는 기원전 10세기에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시작되어, 기원전 8~7세기가 되어야 비로소 중국 북방에 유입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엔 [[춘추시대]] 후기에서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 초기 사이에 등장하는 '''[[호]](胡)'''라는 이름의 족속이 중화권 사람들이 최초로 조우한 유목민이라고 보는 학설이 힘을 얻었다. [[고고학]] 연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대에도 [[몽골 고원]]에 사람이 살긴 했지만, 적어도 기원전 8-7세기까지는 이곳에 살던 민족들이 [[소]]를 키워서 먹고 살던 목축민이나 [[수렵채집민]]이었다고 한다.[* [[상나라]]와 [[한나라]]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몽골어족|원시 몽골인]]이나 [[튀르크어족|원시 튀르크인]]들과 접촉하여 [[소]]를 포함한 몇몇 가축을 수입해오곤 했는데, 그 근거로 송아지 독(犢) 자가 고대 [[몽골어]]로 소를 가리키는 단어인 tuɣul에서 유래했음이 거론된다.] [[전한]] 초기엔 한나라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고제(전한)|한고조 유방]]을 [[백등산 포위전|사로잡을 뻔한]] 기염도 토했으나, 이후 화친으로 돌아섰고, 전한의 형님에 해당하는 위치에서 정기적으로 전한이 재화를 바치는 것에 만족했다. [[무제(전한)|한무제]] 시절엔 [[막북전투|한과의 데스매치]] 끝에 결국 막북으로 밀려나 다섯 명의 선우가 난립하는 혼란기를 거쳐 두 차례 국가가 분열되는 등 중원에서의 패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후 [[후한]]시대에 흉노가 분열한 남흉노 등은 후한의 제후격으로 떨어지기도 했고, [[오호십육국시대]]에 [[서진]](西晉)을 멸망시키고 화북지방에 [[전조(오호십육국시대)|한조]], [[북하]] 등 유목왕조를 세우기도 하지만 이때부터 중국 내부에 들어오면서 문화적으로는 중화권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다가 [[선비족]]에게 된통 얻어맞고 점점 세력이 약화되더니 끝내 흉노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렇게 수백 년 이상 중화제국과 충돌한 관계로 지금도 '북방민족'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유목민족]] 중 하나로, 중국 문화에도 흉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천고마비]], [[만리장성]], [[왕소군]] 등이 대표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