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흉노 (문단 편집) === 유적과 유물 === 문화상으로 흉노는 한족의 중원문화에 필적할 만큼 빠르고 넓게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문화권을 상징하는 몇 가지 심볼적인 유물이나 표징으로는 동복(청동솥), 동물문 장식의 금공 유물들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고분 출토품을 통한 연구가 활발한 편이며 흉노와 한(漢)의 교류나 관계망의 형성에 대한 연구도 많다. 흉노 또한 중국의 유물을 받아들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동경(銅鏡)으로, 당시 동북아시아 사회에서 한나라 문화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게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한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음과 동시에 사여되었던 각종 인장(印章)과 중국식의 마차 구성품들 또한 동경 등과 함께 조사되기도 하여 당시 한나라의 외부 민족에 대한 통제 방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주요한 유물로는 스키타이식 W형 화살촉, [[아케메네스 왕조|아케메네스식]] 양인단검(兩刃短劍) · 칼 · 도끼 · 찰갑 · 고삐 · 마면(馬面) · 방울 · 각종 마차용구 · 대구(帶鉤) · 원경(圓鏡, 둥근 거울), 스키타이식 솥[* 구연부에 두 개의 귀가 달린 큰 심발형(深鉢形) 솥.] 등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을 통해 북몽골 고원에 위치해있던 [[철륵]]이나 [[파지릭 문화|남러시아의 스키타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유물의 특징은 스키타이계 동물 문양을 수용한 점인데, 각종 장식물에 예외 없이 동물 문양이 있다. 이러한 흉노의 스키타이계 청동기 문화는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부터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화북지역에 파급됨은 물론, 동쪽으로는 [[만주]]와 [[고구려]], [[신라]]를 비롯한 [[한반도]]와 멀리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흉노에 의한 동서교류는 또한 호한문화(胡漢文化)의 창출에서 나타나고 있다. 흉노 문화는 스키타이계에 속하는 [[오르도스]] 문화와 주변 문화, 특히 [[전한|한(漢)문화]]와 융합된 이른바 '호한문화'다. 이것은 오르도스 청동기 문화와 맥을 같이 하는 연속선상의 계승문화, 혹은 발전문화로서 한나라 문화적 요소가 뚜렷한 것이 특징인데, 대표적 유적지인 노인울라[* Noin-Ula, [[몽골어]]로 '''[[왕후|왕후(王侯)]]의 산'''이란 뜻.]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 증명된다.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 것으로 추정하는 노인울라 유적지는 [[울란바토르]] 북쪽에서 약 100 km정도 떨어진 산중에 있는데, [[1924년]] [[소련]] 지리학회가 파견해 울란바토르에 체재 중이던 [[소련]] · [[몽골]] · [[티베트]] 탐험대가 고분들을 속속 발굴했다. 총 212기의 고분은 모두 수츠주크테(Sutszukte)를 비롯한 세 골짜기 경사면에 위치하는데, 외관상으로는 남러시아, 남시베리아의 쿠르간 형식과 점재한 소형 성토식분 형식, 그리고 작은 웅덩이식 묘 등 3가지 형태다. 구조는 중국(전국시대와 진 · 한시대)과 한반도(낙랑고분)의 분묘와 유사한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이다. 즉 구조의 주체인 기실(基室)은 지하 광내(壙內)에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씌우고 지하의 곽실(槨室)로 이어지는 갱도를 앞에서 파들어가는 형식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의 고총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하분도, 주로 남측 위에 좁고 긴 봉토를 씌우는 전방구(前方丘)가 주구(主丘)와 이어 붙어 있는 것과 봉토의 기초나 측면 및 표면을 조약돌로 다진 점이다. 그밖에 곽실 내부 장식에서도 다른 점이 엿보이는바, 한국의 경우 기실 내를 벽화로 장식하지만 여기서는 벽화 대신 여러가지 문양의 자수 모직품이나 비단천으로 기둥이나 대들보를 장식한다. 요컨대 알타이 지방 특유의 스키타이 쿠르간 형식에 한나라 시대의 목실분(木室墳) 형태를 융합시킨 일종의 혼합형으로 흉노와 한나라 간의 교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키타이]]나 [[서아시아]] 및 [[소아시아]] 예술에서 자주 보이는 동물투쟁 문양이 확인되며 노인울라 6호분에서 출토된 걸개 모직 카펫에는 [[티베트]]나 [[중앙아시아]]에서 번식하는 [[야크]]가 [[환상종|뿔사자]]와 싸우는 장면을 수 놓았다. 또 다른 문양으로는 [[페르시아]]계의 대칭문양(對稱文樣)을 찾아볼 수 있다. 역시 6호분에서 출토된 [[은]]으로 된 원형식판에는 중앙에 야크를 놓고 좌우에 나무[* 성수(聖樹).]를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끝으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고대 예술품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기하학]] 문양도 일부 유물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6호분에서 출토된 호피(虎皮) 문양의 [[카펫]]인데, 여기에는 방형, 피라미드형, 冂자형, 工자형 등 9가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수놓았다. 흉노와 관련된 자료는 생각보다 많지만 국내에 그렇게 넓게 알려지지 않은 편이고 흉노의 유물들의 여러 요소들이 꽤 동북지역,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서 간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흉노족 신라왕족설]]과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고 모티브적인 차원에서의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았다. 일단 흉노 자체가 [[고조선]]과 동맹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측 기록에서 고조선은 흉노의 왼팔로 기록된다. 오른팔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동투르키스탄 지역]]에 위치해있던 [[토하라인|토하라계]] [[오아시스]] [[도시국가]]들. 당시 토하라계 도시국가들은 흉노의 경제를 먹여살려주는 존재들이었다. 중국이 흉노의 영역인 이곳을 정복하고 흉노를 몰아냈는데, 당시 흉노 경제에 제대로 타격을 입혔을 정도.] 특히 흉노는 한나라와 더불어 기승용 마구(馬具)를 보편적으로 사용했었으며 이로 인해서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경의 동북아시아는 크게 중원계 마구와 흉노계 마구로 나뉘기도 한다. 대표적인 유적들은 대부분 고분 자료들이며 도르릭 나르스, 보르한 톨고이, 골모드, 노용올, 모린 톨고이 등이 유명한 고분이다. 이 가운데서 도르릭 나르스와 모린 톨고이 고분군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 발굴한 유적이다. 동물문 장식이 많은 만큼 실제로 무덤에서도 동물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야 통상 일부 유물에서만 골각기가 확인되지만 흉노는 활부터 시작하여 화살촉이나 각종 장식 등으로 활용한 다양한 골각기를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예 무덤의 시신 안치 공간의 머리맡에 동물의 두개골을 고스란히 묻기도 하는 등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유목민족'스러운 부장품을 매납하였다. ||[[파일:external/depts.washington.edu/fig_35.jpg|width=100%]]|| || 중국 내몽골 자치구 내 전시된 흉노의 유물 || || [[파일:external/static.newworldencyclopedia.org/Xiongnu_belt_buckle.jpg|width=100%]] || || 흉노의 벨트 버클[* 두 마리 고양잇과 동물이 산양의 목을 물어뜯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https://tr.wikipedia.org/wiki/Dosya:Hiung-nu_kemer_ba%C4%9F%C4%B1.jpg|#]] ] || || [[파일:보르한 톨고이 흉노 동복.jpg|width=100%]] || [[파일:유수 노하심 부여 동복.jpg|width=100%]] || || 보르한 톨고이 출토 동복 || 유수 노하심 출토 동복 || ▲흉노의 유적에서 출토된 동복과 [[부여]] 유적에서 출토된 동복 || [[파일:SSI_20190909111435.jpg|width=100%]] || || 투바 공화국 알라타이 저수지에서 발견된 벨트 버클[[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909601005&cp=nownews|#]] || 마치 현대의 스마트폰 케이스를 연상시키는 단촐한 디자인의 유물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