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흉노 (문단 편집) == 인종 == 인종적으로 어떤 존재를 흉노라고 불렀는지는 지금도 분명하진 않다. 흉노란 집단이 없어진 지금에 와선 모든 게 '''추측'''의 영역이기 때문. 일단은 [[튀르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데, 현대 들어 흉노 고분에서 발굴된 흉노 관련 자수화 같은 것을 보면 [[백인|튀르크계 외모]][* [[카자흐인]]이나 [[키르기스인]]같은 동북아 계통 튀르크가 아닌 서쪽 오우즈 튀르크(Oğuz Türk)에 속하는 [[터키인]]이나 [[아제르바이잔인]], [[투르크멘인]] 같은 외모.]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몽골인|몽골계]] 주장도 나오지만, 《몽고비사》로 주장하던 몽골의 선조인 몽올[[실위]]는 몽골 초원 동쪽에 존재하긴 했지만 [[돌궐]]보단 훨씬 늦게 나타났고, 돌궐은 몽골보다 몇 세기 먼저 [[간]], [[가한]](khan)이라는 단어를 쓴 걸 봐 튀르크계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다만 몽골의 조상으로 추측되는 [[동호]]가 흉노에게 정복당하긴 했다.] 이외에 [[퉁구스]] 또는 [[케트족|예니세이어계 민족]] 등 다양한 추측들이 있다. ||[[파일:Noin-Ula_carpet.jpg|width=100%]]|| ||[[파일:C948AFDE-A995-4324-9C16-7ABC2159BB56.jpg|width=100%]]|| || 몽골의 노욘 울라(Noyon Ula)에서 발견된 그림 || 그 외 일부 고분에서 발견된 유골 가운데는 인도유럽계 인종과 유사하다고 추정되는 인골들도 출토되었고, [[몽골]]계일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되는 상황. 다만 동양적 특징이 보이는 장두 인종인 튀르크계가 그런 식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두형]]을 이용해 인종을 구분하는 것이 현재 학계에서는 시대착오적 내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있는데다가 흉노는 [[편두]]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두개골을 변형했으므로 더욱 오리무중이다. 게다가 두개골 측정은 같은 인종이라도 시대와 개인차가 심하다는 한계가 있어서 불안정한 결과를 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점도 있다. 이 때문에 [[터키]]와 [[몽골]]은 흉노의 역사를 놓고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지만[* 터키는 (혈통적-유전적으로 연관이 거의 없음에도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괵튀르크([[돌궐]])와 더불어 흉노 역시 자기들 조상 역사로 본다. 한편, 몽골이나 유라시아(특히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도 흉노와 관련, 꽤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중국과는 사이가 안 좋아 그런지 서로 고고학 연구에 협조적이지 않아 이쪽과 연계 연구는 그다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료가 거의 남지 않은 현재로선 그저 미궁일 뿐이다. 한편, 절충론 비슷하게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유목민족의 집단 연합체가 흉노'''였다는 말도 나온다. [[사마천]]은 <흉노 열전>에서 묵특에 의한 건국 초기의 일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십진법]]을 따른 [[군사]], [[정치]], [[사회]] 조직을 관통하고 있다. 1. 남쪽으로 좌, 중, 우로 된 3대 분할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군주를 중앙에 둔 좌•우 양익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 영민, 분지를 가진 만기 24명이 모인 연합 권력체이다. 여기에 보충 설명을 가하고 있는 이성의 비소왕들도 그들이 인솔하는 제족 집단을 포함하여 흉노 국가는 다원, 다종족의 국가였다고 추측한다. 흉노를 '''민족명'''이면서 '''국가명'''으로 보면 설명 가능하다. 즉 흉노란 여러 유목민족의 여러 집단 중에서도 지배민족의 명칭이고 이것이 동시에 흉노가 이끌던 국가의 이름으로도 쓰였다고 추측한다. 즉 흉노족 자신들이 이끌던 국가명에 자신의 종족명을 붙임읃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흉노 이후의 유목민족들도 중국으로 침투하여 한화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답습했다. 후대의 유연, 돌궐, 위구르 등도 모두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이런 사례는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일시 유럽을 통일한 [[프랑크 왕국]]도 [[프랑크족]]이 건설했지만 실제론 프랑크족이 주류 민족이 아니라 지배층만을 이루었고, 다수 피지배층은 다른 게르만족이나 갈리아인 그라고 로마인들이었다. 그리고 흉노 국가 자체는 망했어도 흉노란 민족 자체는 살아남아 5호 16국시대에 다시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든 것으로 보면 된다. 다만 이 당시의 흉노족은 많이 한화가 되었거니와 건국한 곳이 중국 땅이어서 한, 조, 하 같은 중국 왕조명을 썼던 것이다. 흉노를 국가명과 민족명으로 구별하면 흉노족이 [[선비족]] 등의 다른 민족들과 세력다툼을 벌인 것이나 민족 단위로 분쟁이 끊이지 않은 [[오호십육국시대]]에 [[혁련발발]]이 '[[북하]]' 같은 흉노족 국가를 세운 것 등을 설명하기 쉽다. 물론 확실한 자료가 남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추측이지만, 다른 유목민족의 예를 보아도 흉노를 단일민족으로 보기는 힘들며 여러 유목민족의 집단 연합체일가능성이 제일 높다. [[중앙대학교]] 연구진이 몽골 도르릭 나르스(Duurlig Nars)의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고인골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흉노의 귀족층으로 보이는 60대 중반 남성 인골의 하플로그룹은 서유라시아 계통인 Y-DNA R1a1과 mtDNA U2e1이라고 한다. 2018년 5월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다섯 구의 흉노인 유골의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추출된 4개의 Y-DNA [[하플로그룹]]은 R1, R1b, O3a 및 O3a3b2이며, 추출된 5개의 mtDNA는 D4b2b4, N9a2a, G3a3, D4a6, D4b2b2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유라시안|흉노는 서유라시아계와 동아시아/시베리아계 혈통이 섞여있으며, 이웃한 오손, 강거, 샤카보다 동아시아계 혈통이 더 많이 섞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집단유전학 교수인 정충원 교수가 발표한 2020년 12월 논문에 따르면 동부 [[유라시아 스텝]]의 신석기 후기부터 [[몽골 제국]]이 탄생한 [[13세기]] 까지의 고인골을 분석하면서 얻어낸 데이터를 토대로 유전적 변화도를 구성했는데 이에 따르면 고대 동아시아인과 고대 시베리아인, 그리고 유라시아 스텝 서쪽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스키타이]]와 [[사르마티아]]인의 형질을 가진 사람이 혼혈 내지 공존했다고 한다. 원래 [[철기 시대]] 말엽까지만 해도 이들이 유전적으로 관계가 없었는데 갑자기 대략 2천년 전을 기점으로 섞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흉노 제국의 탄생과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특히 몽골고원 일대의 흉노인 유골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종합하면 Y-DNA [[하플로그룹]]은 C2, E1b1b, J1, J1a, J2, N, N1c, O2, Q1a, R1a, R1b이며, mtDNA [[하플로그룹]]은 B, C, D, F, G, H, HV, I, J, K, M, N9, T, U, X라고 한다. 동아시아인과 시베리아인과 서유라시아인에게 나오는 집단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정 교수는 “몽골 고비사막 동남쪽에는 판석묘를 쓰는 고대 동아시아인 인류집단이, 북서쪽 바이칼호 부근에는 판석묘를 쓰는 고대 동아시아인과 그보다 훨씬 이전에 유라시아 북부에 살던 고대 북유라시아인 유전자가 섞인 인류집단이, 마지막으로 몽골 서쪽 알타이산맥 부근에는 유럽지역에서 스텝을 거쳐 온 전차를 사용하는 인류집단인 아파나시예보 문화인이 각각 살고 있었다”며 “1000년간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 갑자기 섞였다는 사실이 게놈 분석 결과로 처음 확인됐다”고 말했다. 원래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이 시기에 스텝을 통해 들어온 백인 집단이 카자흐스탄까지 들어와 있을 정도로 융성해 몽골 역시 비슷한 인류가 들어와 있는 단순한 구성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로 과거의 예상이 틀린 이론이며 생각보다 동아시아 인류의 역사가 복잡하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최초의 스텝(초원) 제국인 흉노 제국이 형성된 시기(약 2200년 전)와 일치한다. 정 교수는 “동쪽 지역에서 서쪽 지역(유럽) 인류의 유전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 발견되는 등 섞임 현상이 두드러졌다”라며 “이에 따라 흉노는 매우 다양한 유전적 특징을 지니게 됐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치 오늘날의 미국처럼 유전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살았던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정 교수는 “기마술의 보급에 따른 기동성의 증가나 기후변화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가설이며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때 형성된 인류는 지금의 동아시아인과는 많이 다르다. 300년 뒤 흉노가 멸망한 뒤에도 유전적 특징은 계속 변했다. 이 시기에 [[유연]], [[돌궐]]과 [[위구르]], [[선비족]] 등 유목민족이 흉노가 사라진 지역을 부분적으로 차지했는데, 같은 시기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온 사르마티아인 인류가 나타나면서 이들 사이에 서로 밀접한 교류가 일어났다. 현대 동아시아인과 비슷한 유전적 특성이 형성된 것은 지금부터 약 800년 전인 13세기 초에 이 지역에 [[몽골 제국]]이 세워진 이후였다. 다시 동쪽 유라시아인 유전자가 많이 섞여들면서 서유라시아인의 유전자 비중은 줄었고, 그 결과 비로소 현재의 [[몽골인]]과 유전적 특성이 비슷한 인류가 나타났다. 몽골 지역은 5000년에 걸쳐 낙농업이 유행했고 지금도 다량의 유제품을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낙농업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선 [[유당불내증|유당(락토스)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장내미생물 등에 의한 다른 적응을 통해 유제품 소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연구는 한반도에 사는 인류집단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6000년간 동아시아 내륙에 살던 인류의 복잡한 이동과 만남을 세세하게 밝혔다는 의의가 있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후기청동기 이전과 흉노 이후 거란과 여진 등 중세시대 후기의 유골 시료를 더 확보해 추가연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과를 요약해 보면 흉노인들은 동아시아인/시베리아인과 스키타이와 사르마티아인과 그 이전에 존재했던 아파나시에보 문화나 안드로노보 문화와 파지리크 문화 등의 유라시아 스텝 지역 고대인의 후예로 이루어진 유목부족들이 각자 따로 존재했다가 철기 시대 말에 비로소 혼혈이 이루어져 유전적으로 연결고리를 갖추었던 [[유라시안]]임을 굳혀주는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미루어 보면 중국의 사서에서 흉노인에 대한 외모를 묘사한 항목에 동아시아인 같은 외모에서부터 [[금발벽안]][* [[실위]]의 부족 중 하나인 황두실위는 이 금발벽안의 흉노인의 후예로 추정된다.] 내지 [[적발녹안]][* 중국 사서에서 견곤으로 기록된 고대 [[키르기스인]]들을 가리킨다.] 같은 [[유럽인]]을 방불케 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지에 대한 의문이 어느정도 풀리는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