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흑역사/목록/농구 (문단 편집) ==== [[전주 KCC 이지스]] ==== * 2006-07 시즌: 2012-13 시즌 전까지 KCC가 유일하게 최하위를 기록했던 시즌으로, 부상으로 팀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15승 39패라는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 [[서장훈]] 영입에 따른 [[이상민(농구)|이상민]]의 FA 보상선수 이적 파동: 2007-08 시즌을 앞두고 서장훈은 FA로 KCC로 이적하게 되었다. 서장훈이 KCC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팀의 레전드이자 대학교 시절 콤비로 뛰었던 이상민과 함께 뛰기 위해서. 문제는 KCC의 보호선수 설정이었는데, 당시 규정으로 보호선수는 '''FA 영입선수 포함''' 3명만 설정할 수 있다는 [[병맛]] 규정이 있었다. KCC는 임재현도 FA로 영입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설정할수 있는 보호선수는 한명. 근데 KCC에는 이상민뿐만 아니라 추승균도 있었다. 설마 나이가 많은 이상민을 데려가겠냐고 생각하며 추승균을 보호선수로 택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사실 삼성 입장에서도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데려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달라고 했으나 KCC에서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KCC에게는 [[하승진|잘 된 일이었지만]].] KCC는 이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하승진]]을 지명하고 서장훈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전 시즌 성적인 10위에서 2위로 수직상승하는데 성공했고, 삼성 또한 전보다 성적이 크게 오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기에 팀 전력'''만''' 떼놓고 보면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상민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도 보호 못하는 KCC과 KBL의 거지같은 행정이 최악의 형태로 드러난 점에서 흑역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자유계약으로 풀려서 온 서장훈은 시즌을 마친 후 하승진과의 공존 문제로 인해 결국 인천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서장훈이 트레이드된 배경에는 당시 "팀내 불화"라는 루머가 크게 퍼져 있었다. 200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CC는 드래프트에서 최대어 하승진을 지명했는데, 처음에는 서장훈과 하승진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었기에 둘다 보유하려 했다. 그러나 KBL에서 가장 크고, 가장 느린 두 선수가 동시에 뛰는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팀은 당연히 더 젊고 신체조건이 월등한 하승진을 택했고, 서장훈을 트레이드하는 결과가 나온 것. 이 트레이드에 대해 감독인 허재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당시에 입을 열었는데,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서장훈이 먼저 조용히 감독실에 찾아와 자신이 더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팀으로 먼저 이적 요청을 해서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이였다고 한다. 트레이드 요청을 한 이유는 서장훈 본인이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하승진의 자리를 뺏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하며 허재 감독이 서장훈의 이 의견을 받아들인 거였다고.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를 통해 KCC가 뎨려온 선수가 바로 [[강병현]]이었으며, 결국 이 트레이드의 결과는 우승이었다.] * 2012-13 시즌: 2006-07 시즌에 이어 두 번째로 최하위의 성적을 냈다. 시즌 전 팀의 에이스였던 [[추승균]]이 은퇴하고 [[하승진]]이 [[공익근무요원]] 복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여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사실 하승진의 키는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면 당연히 면제였지만 병역 기준이 점점 강화되면서...]로 팀을 잠시 떠나게 된데다 [[전태풍]]마저 규정에 따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어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당시 KCC의 전망은 10승도 힘들다고 할 수준. 1순위로 뽑은 코트니 심스를 시작으로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안 그래도 전력이탈이 심한데 부상까지 많아서]] 2군에서 선수를 호출할 정도로 뛸 선수가 없었고, 시즌 중반에 [[김효범]]을 영입하고 2월 초에 [[강병현]]도 전역하여 그나마 5라운드에서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두긴 했으나 결국 13승 41패의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며 2014-15 시즌 이전까지는 최악의 시즌으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전 시즌의 삼성과 바로 다음 시즌의 동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 김민구 [[음주운전]] 사고: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민구)] * 2014-15 시즌: 2012-13 시즌보다도 더 참혹한 성적을 냈다. 덤으로 2006-07 시즌에 기록했던 10연패 타이 기록과 홈경기 12연패까지 당했다. 공익근무를 마친 하승진이 돌아오고 지난해 득점왕을 차지했던 타일러 윌커슨과의 재계약, FA 최대어였던 포인트 가드 [[김태술]]의 영입으로 강력한 다크호스로 평가받은 만큼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던 [[김민구]]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시즌 아웃이 되면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도사리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 윌커슨은 기복이 심한 데다 최다 턴오버를 기록하는 등 예상과 다르게 상당히 부진했고, 야심차게 영입한 김태술과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하승진마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데다 이들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까지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속절없는 부진이 계속되자 급기야는 10년간 팀을 이끌어오던 [[허재]] 감독이 2015년 2월 자진사퇴하는 충격적인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허재 감독을 보좌했던 [[추승균]]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켜 잔여 시즌을 치렀지만 이렇다 할 반전을 보이지는 못하고 구단 역대 최저 승률을 2시즌만에 갈아치우며 '''12승 42패''',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최하위는 팀 전력이 파탄나버린 [[서울 삼성 썬더스|모 구단]] 때문에 확실히 면할 수 있었다.-- * 2016-17 시즌: 삼성으로 이적한 [[김태술]]을 제외하고 2015-16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주축 멤버들은 그대로 잔류했기 때문에 우승권으로 평가받았으나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특히 [[전태풍]], [[하승진]]의 시즌아웃이 컸으며 [[안드레 에밋]]이 초반에 부상으로 낙마한게 컸다. 물론 가까스로 합류해 여전히 득점감각을 뽐냈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엇박자는 해결되지 못했다.)으로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2년차를 맞이한 [[송교창]]의 성장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해온 [[이현민(농구)|이현민]]의 활약은 위안거리. * [[전주실내체육관]] 우승 배너: 다섯 번의 우승 중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은 전신인 대전 현대 시절 우승인데 마치 KCC가 우승한 것처럼 걸어놨다. 기아 시절의 역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모비스조차 1997 시즌 원년 우승 배너만큼은 기아의 로고가 새겨진 것을 사용한다. 대전 팬들 입장에선 대전을 버리고 연고를 옮긴것도 모자라 우승 기록마저 빼앗아 간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