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흑역사/목록/농구 (문단 편집) === 국가대표 === * [[1972 뮌헨 올림픽/농구 결승전]] * 1988년 올림픽 - 위에 언급된 뮌헨 올림픽 결승전에서 미국이 굴욕적인 패배를 겪긴 했지만 누가봐도 어처구니없는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실력으로 진 건 아니다"라는 아주 합당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훗날 NBA 스타가 되는 에이드리안 댄틀리, 월터 데이비스 등이 이끌던 1976년 미국대표팀은 유고슬라비아를 결승전에서 95대74로 꺾으며 전승 올림픽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80년은 소련과의 관계 때문에 미국이 보이콧을 했지만, 소련이 보이콧을 한 1984년에서도 [[마이클 조던]], [[패트릭 유잉]] 등이 이끄는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31점차로 꺾으며 금메달을 따냈다. 실제로 1988년 대회 전까지 이들은 올림픽에서 단 1패만 했고, 이 1패도 제대로 진 것이라고 하기 무리란 걸 생각하면 미국대표팀의 위용은 여전했다. 그러나 1976년 대회에서 푸에르토 리코에서 1점차로 진땀승을 거두는 등 미국과 세계의 격차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고, 이들의 최대 라이벌인 소련이 돌아온 1988년에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사실 NBA를 주름잡는 미국선수들이 단연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한계가 있었던 이유는 당시 프로들은 올림픽에서 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미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유럽리그와 남아메리카의 프로리그 선수들은 뛸 수가 있었고, 사실상 프로였던 다른 국가들의 실업리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미국의 대학 선수들은 경험많고 몸도 더 완성된 프로들과 경쟁을 해야했다. 그럼에도 워낙 미국과 비미국의 격차가 커서 압도할 순 있었지만 문제는 1988년, 소련 팀을 이끌던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미소간의 갈등 때문에 1985년에 드래프트에서 지명되고도 NBA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세계적인 센터 중 하나였다. 사보니스는 맨발 221cm의 장신임에도 엄청난 운동능력과 더불어 수비력, 슈팅력, 패스, 드리블 능력을 겸비한 만능센터였다. 결국 1995년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합류하지만 이미 만 31세에 가까웠고 큰 부상을 당한 이후였기 때문에 전성기보다 현저히 못한 모습을 보였다. 농구 기자 빌 시몬스는 사보니스가 "마치 콘크리트 농구화를 신고 움직이는 듯 했다"고 묘사했으며, ESPN의 데이빗 쏘프는 만약 사보니스가 젊었을 때 NBA에 왔다면 역사상 가장 패스를 잘하는 빅맨으로 기록되는 것은 물론이고 역대 센터랭킹 톱4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쏘프가 구체적으로 누구보다 위라고 하진 않았지만 보통 가장 위대한 센터 톱3로 꼽히는 선수들은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이며(참고로 이들의 MVP수상 횟수는 각각 5회, 4회, 6회이며 우승횟수는 11회, 2회, 6회. 체임벌린은 우승은 좀 딸리지만 개인기록은...항목 참조) 이 평대로라면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이나 3연속 MVP를 수상한 [[모제스 말론]]같은 괴물들보다 사보니스가 더 잘했을 것이라 봤다는 것. 90년대 블레이저스의 리더였던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사보니스가 합류했다면 포틀랜드가 "장담컨데 4,5개, 심지어 6개의 반지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여담이지만 드렉슬러가 트래이드된 이후 사보니스가 팀에 합류해서 둘이 같이 뛴 적은 없다. 부상에서 회복 중이었음에도 팀에 합류한 사보니스는 훗날 NBA에서 슈퍼스타가 되는 [[데이비드 로빈슨]]과의 매치업에서 우세를 점하며 미국을 준결승에서 82대76으로 꺾고, 결승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으며 우승을 거둔다. 뮌헨 참사와 달리 실력에서 철저히 밀리며 패배해 결승에도 못 오른 미국 대표팀의 충격은 엄청났고, 이는 미국이 자국의 프로들을 올림픽에 합류시킬 수 있도록 로비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1989년에 모든 프로선수들의 올림픽 농구 참가가 허용되며 [[드림팀]]이 출범하게 되고, NBA 최고이자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이끌던 이 팀은 92년 올림픽에서 전설을 쓰게 된다.[* 팀의 공동주장이었던 [[래리 버드]]는 드림팀이 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손쉽게 우승을 거두고 난 뒤 "이는 바르셀로나로 가서, 금메달을 따고 '''그 합당한 자리'''로 돌려놓는 여정을 향한 작은 발걸음일 뿐입니다.("This is just a small step toward going to Barcelona, winning the gold medal and bringing it back where it's '''supposed to be'''.")라고 말했다. "합당한 자리"라는 워딩에서 미국인들이 자신이 종주국인 농구에 대해 갖는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88년 대회에서 쓴맛을 봤던 로빈슨은 드림팀의 멤버로 당당히 합류, 4년 전 자신에게 굴욕을 줬던 사보니스의 리투아니아 팀(소련 해체 후였으므로)과 4강에서 만나 127대 76으로 박살내며 복수를 하게 된다.[* 또 다른 88팀 멤버인 미치 리치몬드는 역대 최강의 센터진 (오닐, 로빈슨, 올라주원)을 자랑하는 1996년 드림팀에 합류해 역시 손쉽게 금메달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예선전서 리투아니아를 만나 104대 82로 손쉽게 승리를 거둔다. 다만 안타깝게 1988년 팀의 다른 멤버들은 설욕의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이는 1990년대 미국 대표팀이 왠만한 올스타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엄청난 로스터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올스타까지 된 대니 매닝, 댄 멀리도 합류하지 못했으니... 2000년대 들어 대표팀의 네임밸류가 확 떨어지긴 했지만 이때 이들은 이미 엄청난 노장이 된 이후였으며 결정적으로 저 팀들은 우승을 못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 뮌헨은 억울하게 진거고 88년은 대학선수들을 보냈다는 핑계라도 있지 '''이쪽은 드림팀으로 3등했다.''' 물론 팀 던컨을 제외하면 NBA최정상급을 총출동시킨 건 아니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