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흥선대원군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파일:IMG_0261.png]] [[파일:IMG_0262.jpg]] 본래 그는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후손|직계후손]]이기 때문에 [[조선/왕사|직계 왕통]]과 [[촌수]][* [[철종(조선)|철종]]과 같은 항렬이긴 하나 '''무려 16촌'''이나 되었기 때문에 [[헌종(조선)|헌종]]이 즉위할 시기에는 [[조선/왕사|국왕이 될 왕위계승권]]이 멀어도 정말 한참이나 멀었다. 그냥 남남인 무일푼 평민.]가 멀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조선)|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의 [[양자(가족)|양자]]가 되면서 [[조선/왕실|직계 왕실]]과 가까운 [[종친]]이 되었다.[* [[인평대군]]의 장남 [[복녕군]], 복녕군의 차남 [[의원군]], 의원군의 아들 [[안흥군]], 안흥군의 아들 이진익, 이진익의 차남 이병원, 이병원의 차남 [[남연군|이구]]가 [[은신군]]의 [[양자(가족)|양자]]로 입적되어 [[남연군]]이 되었다.] 그래서 [[남연군]]과 그의 아들 [[흥인군]], [[흥선군]] 모두 명예직이나마 고위 [[벼슬]]을 지내며 조정의 예우를 받았다. 참고로 남연군의 양부 [[은신군]]은 [[숙종(조선)|숙종]]의 서자 [[연령군]]에게 입적되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 일가를 선원속보에서 찾으려면 연령군파 파보(派譜)를 봐야 한다. 그런데 [[효종(조선)|효종]]의 남자 후손들은 [[헌종(조선)|헌종]]이 즉위할 당시에 이미 많지 않아 절손 위기였기 때문에[* [[현종(조선)|현종]]과 [[숙종(조선)|숙종]] 두 왕이 적자는 물론 서자인 장성한 남자 형제마저도 없는 사실상 [[외아들|외동아들]]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경종(조선)|경종]]의 후사 없음,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요절]],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으로 [[죽음]], [[사도세자]]의 장남 [[의소세손]]의 [[요절]], [[정조(조선)|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홍역으로 인한 [[요절]]은 덤.], 여차하면 그나마 혈통으로 가장 가까운 다른 [[인조]] 아들들 중의 후손들 중에서 [[조선/왕사|왕위 계승]] 후보가 나올 수 있었다. 더군다나 [[효종(조선)|효종]]의 [[조선/왕사|왕위 정통성]] 문제와 [[정치|정치적]] 문제로 [[소현세자]]의 후손들은 사실상 제외되었기 때문에 만약 [[조선/왕사|직계 왕통]]이 단절된다면 실제 혈통으로는 [[인조]] 아들[* [[효종(조선)|효종]]의 사실상 유일한 동복 남동생 [[인평대군]]][* 더 밑에 남동생은 [[용성대군]]이 또 있기는 한데 5살 때 [[요절]]했다. 당연히 후손도 없다.]의 후손이면서 법적으로는 [[은신군]]의 후손인 [[남연군]]의 자손 중에서 [[조선/왕사|왕]]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간혹 이 집안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철종(조선)|철종]] 시대 말기의 [[조선/왕실|왕족]]들은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의 후손들이었다. [[은언군]]의 후손은 종손(宗孫) [[익평군]]과 [[전계대원군]]의 가계를 이을 [[영평군(1828)|영평군]] 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자식이 없어 [[입양]]을 했는데[* 사실 익평군은 [[경은군]]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서자]]인데다 [[익평군]]이 죽을 때 너무 어려서 가문을 잇지 못했다.] [[익평군]]은 [[덕안군|덕흥대원군의 후손]], [[영평군(1828)|영평군]]은 [[청안군(1851)|선조의 9남 경창군의 후손]]을 들였다. [[은전군]]의 가계 역시 [[입양]]으로 이어졌는데 역시 [[완평군|선조의 9남 경창군의 후손]]이었다. 실제 혈통상으로는 [[인평대군]]의 직계후손인 [[은신군]]-[[남연군]]의 가계가 [[조선/왕사|왕통]]과 가장 가까웠다.] 흥선대원군은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태어난 순서대로 적으면 서장남 [[완은군|완은군 이재선]], 적장남 [[흥친왕|흥친왕 이재면]], 적차남 [[고종(대한제국)|고종]]이다. 딸들의 [[나이]]는 기록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장녀가 임천 조씨 조경호의 처, 차녀가 풍양 조씨 조정구의 처, 서녀가 우봉 이씨 이윤용의 처라는 것만 선원속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적차남인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즉위한 후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들은 대부분이 [[프리패스]], [[빽]]으로 그냥 출세했다. 흥선대원군이 대놓고 [[조선/왕실|왕실]]만 뽑아주는 특별 과거를 열어서 공부수준을 안보고 그냥 다 합격시켜 버렸고, 이 사람들은 당연히 흥선대원군의 주요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특히 장남 [[흥친왕|이재면]]의 아들로 흥선대원군의 장손인 [[영선군|이준용]]은 실제로도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선군|이준용]]은 흥선대원군이 수차례 일으킨 [[쿠데타]] 음모 중 마지막이자 가장 끈질기게 [[조선/왕사|다음]] [[대한제국/황사|보위]]를 노릴 차기 대상자로 꼽혀서, [[명성황후]] 등에게 여러 차례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래서 [[일본제국|일본]]으로 상당 기간 도피해서 살았고, [[스트레스]] 및 흥선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대한제국)|왕]]의 큰조카라는 입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왔던 것과 [[조선/왕실|왕실]]에 대한 환멸감이 심한 나머지 오래 못 살고 죽었다.] [[고종(대한제국)|고종]]과 그의 일족들의 관계는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했던 짓들 때문에 정말 끝장나게 안 좋았다. 나중에 [[흥친왕|이재면]]은 소극적 친일, [[영선군|이준용]][* 이재면의 아들]은 적극적 [[친일파]]라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식 등재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셋째형 [[흥인군|흥인군 이최응]]과 그렇게도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흥인군]]이 욕심 많고 무능해서 싫어한 듯. 거기다 흥인군은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뒤 [[명성황후|민씨]] [[여흥 민씨|일파]]의 편에 섰는데, 오죽하면 [[임오군란]] 당시 난을 일으킨 구식 [[군대]]와 [[민중]]이 [[흥인군]]을 죽이면서도 흥선대원군에게 적극 기댈 정도였다. 형제들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는 [[규칙]]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흥녕군 이창응]](李'''昌'''應), 둘째는 [[흥완군 이정응]](李'''晸'''應), 셋째는 [[흥인군 이최응]](李'''最'''應), 막내가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인데 이최응을 제외하고는 전부 가운데 이름자의 [[부수]]가 날 일(日)자다. 이최응의 最의 부수는 갈 왈(曰)인데 아무래도 아버지 [[남연군]]이 이름을 지을 때 비슷한 [[글자]]를 골라서 [[항렬]]자에 맞게 붙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흥선대원군과 같은 [[항렬]] 왕족들의 이름들도 마찬가지이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익종, 문조)의 이름은 '영('''旲''', '''日''' + 大)'이며, [[철종(조선)|철종]]은 [[조선/왕사|왕]]이 된 이후 원범에서 '변('''昪''', '''日''' + 弁)'으로 개명했다. [[은전군]]의 양손자 [[완평군]] 역시 첫 이름은 '병('''昺''', '''日''' + 丙)' 이었다가 '승응('''昇'''('''日''' + 升)應)'으로 바꿨으며, [[완평군]] 이전의 [[은전군]] 양손자였던 [[경평군(1832)|경평군]]의 이름 역시 '호('''晧''', '''日''' + 告)' 였다. [[은언군]]의 장손인 [[익평군]]의 이름 역시 '희('''曦''', '''日''' + 羲)'였고 철종의 큰형인 [[회평군]]도 원래 이름은 원경이었는데 '명('''明''', '''日''' + 月)'로 고친 것이다. [[영평군(1828)|영평군]] 역시 원래 이름은 '욱('''昱''', '''日''' + 立)' 이었다가 후일 '경응('''景'''('''日''' + 京)應)'으로 [[개명]]했다.] '''[[외가]], [[처가]], [[사돈]]이 모두 [[여흥 민씨]]라는 기이(?)한 기록을 갖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부인]] [[여흥부대부인|여흥부대부인 민씨]]는 공조판서 [[민치구]]의 딸로 흥선대원군의 [[어머니]]인 군부인 [[여흥 민씨]][* [[인현왕후]]의 큰아버지인 좌의정 [[민정중]]의 5대손이다.(실제 혈통 상으로는 민정중과 민유중의 형 민시중의 5대손)]의 조카뻘(13촌)이다. 또한 [[며느리]]인 [[명성황후]]는 [[여흥부대부인|여흥부대부인 민씨]]의 동생뻘(12촌)이며[*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동생(처남) [[민승호]]가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의 [[양자(가족)|양자]]로 들어갔다.] 손자며느리인 [[순명효황후 민씨]]는 [[명성황후]]의 조카뻘(13촌)이다.[* 따라서 [[명성황후]]-[[여흥부대부인]]과 [[흥선대원군]]은 [[여흥 민씨|민씨 집안]] 기준으로는 서로 14촌 조카 남매이다.]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이종찬(1936)|이종찬]] 前 [[국가정보원장]]이 그의 외외증손자이다. [[이종찬(1936)|이종찬]]의 외할머니가 흥선대원군의 둘째 딸이다. 전 노동당 대표 홍세화도 역시 그의 후손이다. 홍세화의 외증조부가 이종찬의 어머니와 남매관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