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흥선대원군/생애 (문단 편집) == 재집권 시도 == 그러나 이렇게 [[권력]]에서 물러난 흥선대원군은 얌전히 앉아있지 '''않았다.''' 일단 당장 실권을 잃었다고는 해도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기간만 10년이다. 흥선대원군은 본래 중앙 [[정권]]에서 밀려나 있었던 [[왕실]] 종친, [[남인]] 등의 [[노론]] 이외의 사색당파 잔당, 차별받는 신분이던 [[서얼]], [[중인]] 등을 골고루 등용하고 끌어들였으며 그 때문에 흥선대원군의 세력은 [[사회]] 각층에 [[뿌리]]깊게 널리 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왕의 생부'라는 위치는 [[고종(대한제국)|고종]]조차도 흥선대원군 자신을 제거할 수는 없게 만들었다. 흥선대원군은 집요하게 복권을 시도했는데 사실상 흥선대원군이 살아있을 때 [[조선]]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정변]]에 크건 작건 [[운현궁]]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 부자간의 대립을 틈타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조선에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개국 초에 [[1차 왕자의 난|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내면서 시작된]] 조선 [[왕조]]는 마지막 순간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몰아내려 [[반란]]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는데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모두 아버지가 지고 만다. 1881년(고종 18년) 아들 고종을 몰아내고 [[쿠데타]]를 기도하지만 '[[완은군|이재선]] 사건'은 중간에 걸리면서 일망타진돼 서자인 [[완은군|이재선]], 측근 안기영과 권정호 등만 사형당하고 흥선대원군은 [[국왕]]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면책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