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흥인군 (문단 편집) == 대중매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미백년 이최응1.png|width=100%]]}}} || || {{{#gold '''〈실록 한미백년〉의 흥인군'''}}} || 1982년 [[MBC]] 특집극 〈실록 한미 백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에서는 [[김상순(배우)|김상순]]이 연기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조선과 미국의 수교 조약]]을 원활하게 체결하기 위해 이를 극렬하게 반대하던 유생 홍재학([[김무생]] 분)을 죽여야한다고 [[고종(대한제국)|고종]]([[길용우]] 분)에게 건의한다. 홍재학을 잡아다 [[고문]]할 때 바라보는 썩소가 압권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풍운 흥인군.png|width=100%]]}}} || || {{{#gold ''' 〈풍운〉의 흥인군'''}}} || 1982년 KBS 드라마 〈[[풍운(KBS)|풍운]]〉에서는 [[김성원(성우)|김성원]]이 연기했다. 점잖으나 약간 싱거운 사람으로 나왔다. [[임오군란]] 때 몸을 피하라는 [[김병국]]([[민지환]] 분)의 조언을 무시하고 집에 있다가 찾아온 구식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 죽기 전에 나름 근엄하게 뒷짐지고 "썩 물러가라!"고 한 게 압권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조선왕조 흥인군.png|width=100%]]}}} || || {{{#gold '''〈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의 흥인군'''}}} || 1990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에서는 [[김기일]]이 연기했다. 아래 소개할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처럼 아주 우스꽝스럽지는 않으나 좀 실없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철종(조선)|철종]]([[최수종]] 분) 시절 파락호로 지내는 흥선군([[임동진]] 분)을 걱정하며 [[신 안동 김씨|안동 김씨]] 눈 밖에 나지말고[* 실은 안동 김씨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파락호 행세를 하는 것이지만, 흥인군은 그런 행태가 오히려 찍히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살라고 꾸중한다. [[고종(대한제국)|고종]] 즉위 이후엔 [[흥선대원군]]이 바로 종친을 등용하지 않는 것을 답답해하며 기생 초월[* 흥선대원군이 파락호 시절 자주 찾던 기생.]([[김영란(배우)|김영란]] 분)을 만나 앞으로 흥선대원군이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 들은 게 있나 싶어서 떠보려하나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다. 고종 친정 무렵부터 민씨 정권에 협력하였고 동생과는 척을 진다. 역사대로 [[임오군란]] 때 살해당하는데 한밤중에 집 안에서 부인 손을 잡고 도망치다가 찌질하게 혼자 살려고 부인을 [[마루]]에 패대기치고 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구식 군인이 던진 창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찬란한 여명 흥인군.png|width=100%]]}}} || || {{{#gold '''〈찬란한 여명〉의 흥인군'''}}} || 1995년 [[KBS 1TV|KBS1]] 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는 [[이신재]]가 연기했다. 재물과 권세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나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명성황후 흥인군1.png|width=100%]]}}} || || {{{#gold '''〈명성황후〉의 흥인군'''}}} || 2001년 [[KBS 2TV|KBS2]] 드라마 〈[[명성황후(드라마)|명성황후]]〉에서는 [[이영후]]가 연기했다.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발언들을 생각없이 하고 다니며, 목소리만 크고 어리숙한 인물로 등장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이 드라마에서 [[개그 캐릭터]] 기믹을 맡았다. 특히 '''[[신정왕후 조씨]]([[김용림]] 분)와 [[철인왕후|철인왕후 김씨]]([[유혜영]] 분) 면전에서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를 까는''' 장면과, 동생 흥선대원군([[유동근]] 분)의 대역사였던 [[경복궁]] 중건 중 화재 사건으로 전소되자 '''왕실이 번성하려는 듯 활활 타오른다.'''며 실없는 소리를 동생 면전에서 늘어놓는 장면은 보는 사람이 [[손발퇴갤]]할 정도다. 전자에선 보다 못한 동생이 직접 "형님!"이라며 버럭했으며, 그러자 오히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랬다"고 눈물을 짰다. 후자에선 동생이 "천민들도 그따위 헛소리는 안 한다"며 형이고 뭐고 빡쳐서 "삭탈 관직하고 [[의금부]]에 가두라"고 일갈했다. 이외에도 눈치 없거나 생각 없는 언행으로 동생에게 욕 먹는 장면이나 대놓고 동생이 무시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임오군란]] 때 흥인군이 [[끔살]]당하자, 흥선대원군이 장례도 못 치르게 하면서 형수인 흥인군 부인([[엄유신]] 분)에게 '사람도 아닌 짐승을 묻을 수 있냐, 대역죄로 다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 맘 같아선 [[능지형|사지를 절단내]] [[효수]]하고 싶다'라며 막말까지 한다.[* [[여흥부대부인]]이 이 말을 듣고 제정신이 아니라며 기겁했다.] [[임오군란]] 때 폭동을 일으킨 군인들이 대궐로 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궐을 빠져나와 집으로 도망갔으나, 막상 군인들이 대궐로 가기 전에 흥인군의 집부터 습격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그 뒤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군인들의 흥인군 살해 장면이 코믹하면서 다소 잔혹하게 묘사되었다. 끌려나온 흥인군이 몸을 가누지 못하며 헛주먹질과 팔을 휘저으며 "썩 물러나지 못할까?" 라며 우스꽝스럽게 소리치다가 군의들의 웃음과 김장손의 발길질에 넘어지고 목숨을 구걸하다가, [[철퇴(무기)|철퇴]]로 내리치고 쓰러진 흥인군을 여러 군인들이 달려들어 난도질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매천야록》 기록처럼 아주 멍청한 사람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종친]]의 좌장격 인물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고,[* 당연하겠지만 위에처럼 멍청하기만 한 인물이면 절대 보내지 않는다!!! 저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만일 사신으로 가면 청나라에서 "조선은 왜 이런 멍청한 왕족을 사신으로 보낸거냐? 우릴 무시하냐?" 라고 반응할 수 있었다.] 흥선대원군에게 불만을 가지고 조카 [[고종(대한제국)|고종]]과 협력하며 흥선대원군이 실각된 후 '유유정승'이라 불린 《매천야록》 기록과는 달리 고종이 친정하는 조정의 중심 인물로서 국정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는 인물로 나온다. 임오군란 때 병사들에게 맞아죽는 최후는 같다.[* 다만 그냥 몽둥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모습으로 나온다.] 여기서의 묘사가 실록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흥인군은 그렇게까지 사람 자체가 우둔했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서화]]에도 능한 교양인이었던 동생에 비해[* 흥선군의 난은 석파란이라 하여서 훗날 [[독립운동가]]들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 석파란을 위조할 정도였다. 흥선군이 [[김정희]]의 제자였으니 더 설명은 필요없다.] 교양이 부족했던 면이 《매천야록》 등의 야사에서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흥인군 역시 [[철종(조선)|철종]]때에 동생과 함께 종친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인물로 칭송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엎드려 원하건대, 환첩(宦妾)은 한결같이 우리 조종의 법으로 단속하여 제어하고, 종친(宗親)의 기거(起居)는 한결같이 남연군·흥인군·흥선군을 본받도록 하소서." - 철종실록, 철종 3년 7월 10일. 부교리 김영수의 상소에서. 남연군과 그 아들들인 흥인군 형제는 다른 종친들에 비해 신중하고 사려깊은 처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이두호]]가 그린 만화 '이두호의 가라사대'에서 정말로 추하게 죽는다. 난군이 들이닥치는데도 곳간 열쇠를 찾느냐 열중하여 열쇠를 찾아 좋아라 기뻐하는데 난군들이 들이닥쳐 "이최응이 여기 있다!", "죽여라!" 라고 소리치자 열쇠를 든 채로 굳어버린다. 이후, 피투성이 시체로 한 컷 나오면 난군들에게 참살당하여 시체 형체조차 남지 못했다고 서술된다. 그 [[이두호]]가 그린 [[객주]]에선 등장은 없고, 임오군란 이후에 민겸호 대신 이최응이 나섰다는 말에 난군들이 무어라? 이최응? 그놈이나 민겸호나 차이가 없다면서 버럭거리는 대사에서 짧게 언급된다. 그만큼, 극중 난군들에게 민씨 일가와 더불어 죽일 놈으로 취급되는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