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키아게샤 (문단 편집) == 일본으로 돌아간 히키아게샤 == 식민 지배에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 입장에선 가해자였지만, 정작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식민지]]에서 살았고 [[일본어]]와 [[일본/문화|일본 문화]]에 서투르다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당했다. 패전 직후에 일본에선 일본 제국주의를 연상시키는 히키아게샤에 대한 언급을 영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차별에는 히키아게샤들의 출신이 하류층이었던 영향도 있었다. 당시 일제는 자국 내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빈농, [[부라쿠민]]들을 모아 집단 이민단을 내보내곤 했는데, 히키아게샤들은 이미 식민지로 나가기 전 [[일본]]에 있을 때부터 하층민이었으므로, 귀국 이후에도 그 대우가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었다. 또한 기껏 본토로 재산을 가져왔다 해도 일본도 전후기인 1945~1949년에는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만큼, 달러화같은 외화나 금, 부동산같은 현물자산으로 환전하지 않는 이상은 현금이 휴지조각이 되어서 넉넉하게 먹고살기 힘들었다는 이유도 있기는 했다. 일례로 [[조선을 떠나며]]란 책에서도 이들이 귀국한 뒤 겪었던 어려움이 상세히 적혀 있다. 이들의 경험이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기문학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장기간 식민지에 체류하며 성장한 경우에는 그 나라에 문화적으로 동화된 상태라서 귀국 후에도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차별 대우를 당했다. 이 때문에 몇몇 가난한 히키아게샤들은 [[야쿠자]]같이 범죄로 빠졌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현재까지도 몇몇 일본 대학들은 입시 과정에서 히키아게샤와 그 자손에 대한 [[특별전형]]을 실시한다. [[일본]] 현지에서도 한동안 언급을 영 기피했고, 해외에서 이들을 다룬 문헌이나 연구는 극히 드물다. 그나마 비교적 일본에 우호적인 대만에서는 언급이 좀 있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