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키아게샤 (문단 편집) == 어록 == >'식민지를 가지는 것, 타국 사람을 식민지화하는 것이 얼마나 그 '''종주국 인간을 망가뜨리고 추락시켰는가''', 그것의 심각성을 일본의 지식인도 국민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 >'국민국가 비판'의 학문적 조류를 만든 니시가와 나가오[* 일제 치하 조선 평안북도 강계군(現 강계시) 출신으로 한반도에서 태어난 히키아게샤이다.] [[리츠메이칸 대학]] 명예교수 著, 에세이 <식민지주의의 재발견> 中 >'내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15년 동안 조선에 일본인으로서 있었다. 식민자[* 식민지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나라 출신으로 식민지에 와서 생활하는 사람]로서 거기에 있었다. 나는 아이였다고 해보아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아마 나는 조선인들에게 무해하였을 것이다, 라는 주장 역시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다. (중략)역사란 이를테면 이와 같은 것으로, '''내가 아이였으며 무해했을지언정, 나 한 사람만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제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란 이렇게 냉혹한 것이요, 그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일본인은 이 역사를 몸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짊어 나가야만 한다.' >----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 작품을 다수 남긴 작가, 고바야시 마사루[* 1927년 경남 진주 출생, 대구와 안동에서 유소년기를 보내고 1945년 [[일본육군항공사관학교]]를 60기로 입교하였으나 일제 패망으로 임관과 [[특공]]--반자이 어택--은 하지 못함. 1948년 일본 공산당 입당, 신일본문학회서 활동. 1950년 [[레드 퍼지]] 반대 화염병 투쟁으로 [[와세다대학]] 중퇴. 1953년부터 도쿄도 스기나미 진료소 근무 및 공산당 지역 활동, [[재일 조선인]]과 [[히키아게샤]]를 다룬 소설들을 발표. 1971년 장폐색으로 사망. 작품의 특징은 어린 시절 조선에서 살며 자연과 사람들(조선인)에게서 느꼈던 좋은 기억이 있지만, 결국 국가가 아닌 개인일지라도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지배자, 피지배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애향심]]과 소속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 著, 에세이 <몸 깊은 곳의 이미지> 中 >'내지'[* 일제시대에 일본 열도를 이르던 말로 조선, 대만 등의 식민지는 외지라고 불렀음]에 인양되어 온 나는 거기에서 이방인이었다. 방언을 모르고, 살아야 할 집도 경작해야 할 땅도 없는 우리들은 내지(일본)에 고립되어 있었다. <인양자의 자식>이라 불리며 '''조소의 대상이 될 때마다 나는 반도를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는 거부당한 땅이었다.''' >---- ><핼쑥해진 말을 보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가, [[이츠키 히로유키]][* 후쿠오카 출생이지만 서울과 평양에서 유년기를 보낸 케이스이다.] 著, 에세이 <긴 여행의 시작> 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