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타이트 (문단 편집) ==== 한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터키 카르케미쉬.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터키 신히타이트.jpg|height=300]]}}} || || '''{{{#F0E68C 히타이트 보병}}}''' || '''{{{#F0E68C 히타이트 전차병}}}''' || 다른 연구에 의하면 당시 히타이트의 철기 제작 수준은 동시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가 사용하기 시작했던 철기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철제 무기 역시 상용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출처1 'From Bronze to Iron' 56-58p. Jane C. Waldbaum] 히타이트의 유물 중에 청동기보다 우수한 품질의 철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히타이트의 제철 수준은 그동안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청동기 문화는 수천 년을 발달해 극한의 정점을 찍었는데, 그 청동기의 품질을 고작 발견된 지 백여 년밖에 안 된 철기로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동시대에 [[카데시 전투]]에서 맞붙은 [[람세스 2세]]가 이끈 이집트군보다는 이른 시기에 철기를 사용한 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부조는 미술적으로는 정형화된 양식이지만 [[고증]]은 상당히 충실해서, 이집트군의 전차([[채리엇]])와 히타이트군의 전차의 차이나 시대에 따른 히타이트군 전차의 변화까지 분명하게 묘사했다. 예를 들자면 히타이트는 [[철기 시대]]에 돌입해서 전차의 축에 [[철(원소)|철]]을 사용해 3명을 버틸 수 있는 전차를 묘사했고, 이집트 전차는 아직 [[청동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해 전차 축에 [[청동]]을 써서 2명밖에 버티지 못하는 전차를 그렸다. 게다가 [[수필룰리우마 1세]] 시대의 히타이트군을 묘사한 부조에는 히타이트군도 전차에 2명이 탄 것으로 묘사하여 현대인들도 히타이트군 전차가 언제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히타이트는 철기로 무장하고 이집트는 청동기로 무장했는데도 이 전투에서 히타이트가 이집트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히타이트가 사용한 초창기 철기가 무슨 주변 청동기 문명을 압도하는 오버 테크 신기술까진 아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히타이트의 철기 제조 기술은 그 특성상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갈 수 없었다. 히타이트의 자연풍으로는 오직 황야에 바람이 거세게 부는 얼마 안 되는 때에만 철을 만들 수 있었으니 생산량이 아주 적고 공급도 일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생산 시기, 생산지는 물론 제조에 필요한 기술도 아주 특수한 것으로서, 천시(天時. 황야에 맹렬한 바람이 불어오는 때)와 지리(地理. 하투샤 부근의 황야)와 인화(人和. 제조방법을 아는 히타이트인)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위와 같은 이유로 히타이트에선 바람의 신이 최고신이었기도 해서[* 히타이트는 자신의 점령지가 늘어나면 그 점령지에서 원래 섬기던 신도 받아들여서 자기네 신전에 같이 두고 섬겼다. 비슷한 이유로 [[트로이]]의 수호신이었던 [[아폴론]] 역시 하투샤에 숭배한 흔적이 남아 있다. 히타이트식으로는 아팔리우나라고 읽었다. 그 정도로 신들의 서열이 장난아니게 복잡한데, '''단 한 번도 바람의 신을 능가하는 서열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세상에 태양신이 아닌 다른 신을 중심으로 하는 토테미즘, 샤머니즘 종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신인 제우스가 벼락의 신인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초기에는 제우스가 천둥신과 태양신을 겸했던 흔적도 종종 남아 있다. 신화가 체계화되며 헬리오스와 아폴론에게 그 자리가 넘어간 것. 그리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는 물론이고 중국, 고구려, 일본, 인도, 심지어 지구 반대편 [[타완틴수유]]와 [[아스텍 제국|엑사칸 틀라톨로얀]]도 태양신앙이었다.] 당시 히타이트 문명에서는 '철기 자체가 초자연적인 신성한 재료'로 대우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이 시대에는 단지 철로 만들어진 것 자체가 [[칠지도]]나 [[사인검]] 정도의 주술적 권위를 가진 셈이다. 심지어는 주변국의 군주들이 히타이트에게 철을 선물로 달라고 청한 편지가 발견되었을만큼, 철은 거의 보석 취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에서도 [[가야]]가 철을 화폐로 쓴 예시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