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피 (문단 편집) === 몰락 === 그러나 [[1970년대]]가 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고, 히피의 이상은 점점 흔들리기에 이른다. 특히나 [[찰스 맨슨]]이 일부 극단적 히피들의 [[컬트]] 교주로서 군림하며 [[찰스 맨슨#s-2.3|살인을 사주하고]], 그들을 [[세뇌]]하여 착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당시 불길처럼 번지던 [[크랙 코카인]] 등 마약의 범람 등으로 인해 히피들에 대한 내외부적인 인식이 변하게 된다. 실제로 [[1969년]]~[[1972년]]은 히피 [[살인마]]의 시대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히피들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계기가 되었다. 히피 운동이 사회적인 변혁을 일으켜 줄 것이라 기대하고 동조했던 [[운동권]]들도 히피들의 무능함에 학을 떼고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펑크 문화|펑크]]가 떠오르던 [[1970년대]] 중반 쯤에 이르러선 히피 무브먼트는 사실상 와해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히피들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을 개최하면서 이제 1969년이 지나고 1970년대가 되면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리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이상향에 젖어 있었다.[* 당장 이 당시에 나왔던 구호가 'Make a love, not the war', 즉 '전쟁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자'였다.][* 70년대에 대한 이상적인 낙관론은 사실 60년대 저항운동 전반에 걸쳐 흐르던 정서이기도 했다. 60년대 [[전공투]] 학생운동 세대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자신들이 서른이 넘을 때 쯤엔 전쟁도 인종차별도 없어질 거라 믿었다 한다. 그만큼 60년대가 격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타몬트 공연]]의 헬스 엔젤스 사건 같은 것이 터지고, 베트남전이 종결되면서 급격히 세력을 잃는다. 이들 사상의 주요한 모토였던 록 음악[* 특히 약물의 힘을 빌린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음악. 록 중에서도 사이키델릭 록은 히피들의 지향점이 담긴 장르였다.]도 1970년대를 넘어가며 히피 신비주의를 버리고 급격히 세속화된다. [[1980년대]]쯤 되면 이제 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받게 된다.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소설로는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가 있다. 결정적으로 1980년대에는 '''[[에이즈]]'''의 공포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하며 약물 파티[* 현대에도 그렇지만 마약중독자들은 [[주사기]] 바늘값을 절약하기 위해 주사기를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다. 혈액으로 전염되는 에이즈가 창궐하기 좋은 환경인 것.], 집단 난교로 대표되는 히피 문화는 끝장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히피 세대를 대변한 록 아티스트를 들자면 [[도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크림]], 모비 그레이프 등등이 있고, [[비틀즈]]조차도 당시의 히피 세대의 사조를 따랐다.[* 비틀즈는 히피로 출발한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아주 부드럽게 타면서 히피 문화를 이끌었다. 저 위에 기술된 찰스 맨슨도 비틀즈를 굉장히 숭상했다. 당장 경쾌하고 발랄한 노래를 부르던 비틀즈도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All You Need Is Love'같은 진지하고 심오한 내용의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으며 특히 존 레넌은 이후 이러한 사조에 완전히 몸담게 된다. 오죽했으면 존 레넌이 불렀던 'Imagine'이란 노래를 두고 '존 레넌이 공산주의를 찬양한다'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히피 세대의 "무사안일", "막연한 [[평화주의]]"는 훗날 [[펑크 문화|펑크]] 무브먼트에게 미친듯이 까이게 된다.[* 펑크가 히피에게서 얻어온 것은 공동체 정신 하나밖에 없다. 그마저도 중요성만 자각한 거지 [[펑크]]의 공동체 문화는 히피하곤 다르다. "대충 공동체가 중요하긴 하지. 근데 쟤네(히피)는 개쓰레기 놈들이니까 쟤들 처럼은 말고." 정도의 반응.] 그들의 자식뻘인 [[X세대]]도 히피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사회학적으로는 히피의 공동체는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방증하는 결과밖에 되지 못했으며 공동분배를 주장하던 수많은 히피집단은 사실상 [[딜레마]]에 당착하여 내부적으로 붕괴되었다. 거기다가 히피 중 극단적인 쪽은 80년대에 반대쪽 극단인 '''신비주의 기독교'''로 빠져서 반대방향으로 신나게 역주행하며 [[삽질]]을 하기도 했다. 물론 기독교계는 이를 고깝게 보았고, 대다수의 히피들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한 자신들만의 교단을 만들어 분리하기에 이른다. 위와 같은 모순과 문제점에다 히피문화를 즐겼던 부머 세대들이 나이 먹고 [[꼰대]]로 돌변하면서 오늘날 자식뻘, 손자뻘인 [[Z세대]]들과 [[OK Boomer|갈등이 빈번한 편이다.]] 반대로 꾸준히 유연한 사고를 유지하려고 했던 부류도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젊은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는 과거 1960년대 스타일의 히피들은 거의 종적을 감춘편이지만 아직도 정착하는 삶 보다는 방황하는 삶을 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스스로 돈이 없거나 사회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들, 특히 일부 젊은이들이 현대판 히피가 되는 경우는 아직도 있다. 특히 과거에 히피 문화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 지역에는 이런 유사한 문화들이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남아있는 편이다. 현재 [[힙스터]]라고 불리는 부류가 이런 히피 문화중에 일부를 변조해서 계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