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프랑스의 군인]][[분류:1875년 출생]][[분류:1940년 사망]] |||| '''프랑스 제1집단군 총사령관[br]{{{+1 가스통 빌로트}}}[br]Gaston Billotte'''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aston-Henri_Billotte.png|width=100%]]}}} || ||<|2> '''본명''' ||가스통 앙리 빌로트|| ||Gaston-Henri Billotte|| ||<|2> '''출생''' ||[[1875년]] [[2월 10일]]|| ||[[프랑스 제3공화국]] [[그랑테스트|그랑테스트 레지옹]] 오브주 솜발|| ||<|2> '''사망''' ||[[1940년]] [[5월 23일]] (향년 65세)|| ||[[벨기에 식민제국]] [[베스트플란데런|베스트플란데런주]] 이에페르|| ||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25]] [[프랑스 제3공화국]]|| || '''직업''' ||군인|| || '''학력''' ||생시르 사관학교[* École spéciale militaire de Saint-Cyr] {{{-2 (졸업)}}}|| |||| '''군인 경력''' || || '''복무''' ||프랑스 육군|| || '''계급''' ||대장|| [목차] [clearfix] == 개요 == 가스통 앙리 빌로트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군인으로 제1집단군 총사령관을을 역임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생애 == 빌로트는 1896년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 하고 보병에 입대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여단 사령관과 참모 장교를 역임했다. 종전 이후, 그는 [[1919년]]~[[1920년]]까지 [[폴란드 제2공화국]] 주재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일하다가 [[1927년]]에 육군 대장으로 승진하고 [[1930년]]~[[1932년]]까지 [[프랑스 보호령 모로코]], [[프랑스령 튀니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등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총사령관을 역임했다. 64세의 나이로 은퇴를 앞두고 있던 그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벨기에 인근에 본부를 두고있던 제1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이후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에 의해 패전을 겪고 사기가 크게 저하된다.[* 오죽하면 5월 18일에 만난 영국 장교에게 "난 망가졌으며 기갑 부대를 상대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 [[1940년]] [[5월 12일]]에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3세]]와 [[영국]]의 고트 장군의 작전을 조정하는 일을 총괄하게 되었지만 능력 부족과 패전에 의한 충격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국]] 정부는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 참모총장을 파견해 사기를 올리고자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결국 그는 그의 부대와 남부로 철수했고 [[5월 21일]]에 이에페르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후 복귀하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2일간 혼수상태가 지속되다가 결국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