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 공화국 집정관]][[분류:기원전 1세기 집정관]][[분류:로마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기원전 1세기)] ||||<#800080> {{{#ffffff {{{+3 '''가이우스 멤미우스''' }}}[br]{{{-1 [[라틴어]]: Gaius Memmius }}} }}} || ||<#800080> {{{#ffffff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800080> {{{#ffffff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800080> {{{#ffffff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800080> {{{#ffffff '''지위''' }}} ||[[노빌레스]] || ||<#800080> {{{#ffffff '''국가''' }}} ||[[로마 공화국]] || ||<#800080> {{{#ffffff '''가족''' }}} ||[[가이우스 멤미우스(기원전 58년 법무관)|가이우스 멤미우스]](아버지)[br]코르넬리아 파우스타(어머니) || ||<#800080> {{{#ffffff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800080> {{{#ffffff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800080> {{{#ffffff '''임기''' }}} || 기원전 34년 || ||<#800080> {{{#ffffff '''전임''' }}} ||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기원전 34년 집정관)|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br][[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기원전 34년 집정관)|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 ||<#800080> {{{#ffffff '''동기''' }}} ||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800080> {{{#ffffff '''후임''' }}} ||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br][[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기원전 34년 집정관)|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생애 == 기원전 3세기부터 [[쿠르수스 호노룸]]을 역임했지만 [[집정관]]에는 그가 선임되기 이전에는 이르지 못한[* 사실은 기원전 100년 집정관 선거에서 [[가이우스 멤미우스(기원전 111년 호민관)|가이우스 멤미우스]]가 집정관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지만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 추종자들이 일으킨 폭동에 휘말려 살해되는 바람에 실제로 취임하지 못했다.] [[노빌레스]] 가문인 멤미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가이우스 멤미우스(기원전 58년 법무관)|가이우스 멤미우스]]는 기원전 66년 호민관을 역임하면서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치르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의 [[임페리움]]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에게 넘기게 했고 기원전 58년 [[법무관]]을 역임한 뒤 기원전 56년 가문의 염원인 집정관에 도전했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자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어머니 코르넬리아 파우스타는 [[독재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딸이다. 그는 기원전 51년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다. 그가 주조한 [[데나리온]]에는 아버지가 주조한 것과 구별하기 위해 "가이우스의 아들 가이우스 멤미우스( C. Memmi C. f.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 동전에는 세레스 신의 두상이 새겨졌고, 뒷면에는 그가 비티니아 총독을 역임하면서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다는 내용이 새겨졌다. 이는 고대 사료에는 발견되지 않은 사실이다. 또다른 데나리온에는 세레스와 퀴리누스의 두상이 새겨졌다. 사료에는 그가 [[카이사르의 내전]]과 [[해방자 내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갈등 동안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기원전 34년 7월 1일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기원전 34년 집정관)|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를 대신해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그는 집정관의 자격으로 율리우스 가문의 시조 비너스를 기리기 위한 경기를 조직했다. 얼마 후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기원전 34년 집정관)|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에게 직임을 넘기고 물러났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