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남성 정치인]][[분류:1972년 출생]][[분류:일본의 정치인 자녀]][[분류:총리 자녀]] ||<-2> '''도쿄도 무사시노시의회의원[br]{{{+1 간 겐타로}}}[br]{{{-1 菅源太郎 | Kan Kentarō}}}''' || ||<-2>{{{#!wiki style="margin: -6px -10px" [[|width=100%]]}}} || ||<|2> '''출생''' ||[[1972년]] [[10월 30일]] ([age(1972-10-30)]세) || ||[[도쿄도]] || || '''현직''' ||무사시노시의회의원 || || '''링크''' ||[[http://www.kangentaro.com/|[[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5px]]]] || || '''학력''' ||[[교토세이카대학]] {{{-2 (학사)}}} || || '''가족''' ||부친 [[간 나오토]][br]모친 간 노부코[br]동생 간 신지로[br]배우자[br]슬하 자녀 2명 || || '''정당''' ||[include(틀:입헌민주당(2020년))] || || '''경력''' ||국회의원 비서 {{{-2 (1998~1999)}}}[br]국회의원 정책담당비서 {{{-2 (2022~2023)}}}[br]'''도쿄도 무사시노시의회의원 {{{-2 (2023~현직)}}}'''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정치인]]으로 제94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낸 [[간 나오토]]의 장남이다. == 생애 == 당시 시민운동가였던 간 나오토의 장남으로 [[1972년]]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무사시노시]]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중퇴했으나 검정고시에 합격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1990년]]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을 요구하는 10대 모임을 구성하면서 시민운동계에 본격적으로 투신했다. 이 시절 리버럴 성향 논객으로 논섹트 래디컬[* [[전공투]] 이후 등장한 무당파 좌파 그룹을 뜻한다. 폭력적인 신좌파 및 일본공산당과 그 청년 조직인 민청에 모두 반대했던게 그 특징.]들과 자주 설전을 벌였는데, 재밌는 점은 아버지인 간 나오토가 바로 논섹트 래디컬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 2003년, 아버지가 있는 민주당의 공인을 받아 보수세가 매우 강한 [[오카야마 1구]]에 중의원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36% 득표율로 참패해 낙선했다. 2년 뒤에도 다시 한번 같은 소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이번엔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승부수에 걸려 민주당이 참패한 영향을 받아 오히려 득표율이 29%로 내려가 더 크게 패했다. 이때 아버지가 2003년에는 당대표였고, 2005년에는 지도부에선 물러나있었지만 어쨌든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던데다가, 본인이 오카야마 1구에 속한 곳에서 실제 거주한 경험이 없었던만큼[* 간 가문의 본적지가 오카야마 1구에 있는 오카야마시 키타구 타케베초이기 때문에 아예 인연이 없는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명분이 떨어지는건 사실이다.] 소위 '아빠 찬스'를 통한 세습 시도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간 나오토는 아버지인 내가 정치인인만큼 소위 일반적으로 2대 세습으로 보이는건 피할수 없지만, 내 지역구를 물려주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므로 세습을 한건 아니라고 주장했다.[[https://web.archive.org/web/20140906202307/http://www.47news.jp/CN/200306/CN2003062401000516.html|#]] 간 겐타로 본인이 다른 세습 정치인들과 달리 시민운동에 오랜 기간 헌신해왔던데다가 1998년부터 2년간은 시민운동을 고리로 다른 의원의 국회의원 정책비서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만큼 세습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다소 억울할 수 있지만, 아버지 간 나오토 본인부터가 자민당 내 의원직 세습을 강하게 비판해왔던 만큼 향후 정치를 하면서도 이런 비아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는 당의 공인을 받지 못해 출마 뜻을 접었고 대신 중의원 의원 선거 데이터북을 펴내는데 참여하는 등 정치와의 끈은 이어간다. 이때 자신의 뒤를 이어 출마한 [[다카이 다카시]]가 민주당 돌풍을 타고 47% 득표율을 기록해 비례대표 당선되었는데 겐타로로서는 조금은 아쉬울만한 부분. 한편 2006년에 뒤늦게 [[교토세이카대학]]에 입학해 2010년에 졸업했다. 이후에는 시민사회 관련 연구기관인 제1종합연구소(第一総合研究所)에 연구원으로 취업해 근무해 제도권 정치와는 다소 멀어지는듯 했다. 그런데 2022년 갑작스럽게 아버지 간 나오토의 국회의원 정책담당 비서로 임명되면서 다시 정계로 돌아온다. 보통 일본에서는 아버지의 국회의원 비서 역할을 맡는 것이 지역구 세습의 시작이기 때문에 고령으로 정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아버지의 선거구인 [[도쿄도 제18구]]를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 직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간 나오토가 2023년 11월 5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런 추측이 더 커졌지만, 아들인 겐타로가 아니라 현직 무사시노시시장인 [[마쓰시타 레이코]]가 지역구 승계 작업에 들어가면서 예측이 빗나갔다. 대신 12월에 열린 무사시노시의회 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26.8%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해 드디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여담으로 아버지 간 나오토가 지원 유세에 나서고, 개표일에도 함께했는데 아들의 당선이 퍽 기뻤는지 세습 시도에 대한 [[산케이 신문]]의 비난에 가까운 질문을 흘려넘기면서도 미소가 만연한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2월 25일자로 처음 등원하면서 공식적으로 무사시노시의회의원이 되었다.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일본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2> [[오카야마 1구]] ||<|2> [include(틀:민주당(일본))] || 63,463 (35.71%) || 낙선 (2위) || ||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61,357 (29.31%) || 낙선 (2위) || || || 2023 || 무사시노시의회의원 보궐선거 || [[무사시노시]] || [include(틀:입헌민주당(2020년))] || '''13,894 (26.79%)''' || '''당선 (2위)'''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