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1899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ffffff {{{+1 강정순}}}[br]姜貞順}}}'''}}} || ||<|2> '''출생''' ||[[1899년]] || ||[[전라북도]] [[전주시]] || ||<|2> '''사망'''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대통령표창 || [목차] [clearfix] == 개요 == [[3.1 운동]] 당시 전주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단식저항을 한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2019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생애 == 강정순은 1899년 전라북도 전주군 전주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고 전주에도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이에 당시 전주에 있던 교사와 학생, 종교인들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3월 13일 전주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학생이었던 강정순도 군중들과 함께 전주면 남문 밖 장터일대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약 100여명의 군중들이 남문 밖 장터에서 시작하여 시내를 향해 행진하였으며 일제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경찰은 시위를 주도한 20여명을 체포하였고 이 중에 여학생은 강정순을 비롯해 10명이었다. 체포된 강정순은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나흘 동안 [[단식]]을 하며 일제에 맞섰다.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953485|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