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전주시 출신 인물]][[분류:1898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진주 강씨]]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ffffff {{{+1 강준구}}}[br]姜俊求}}}'''}}} || ||<|2> '''출생''' ||[[1898년]] [[10월 13일]] || ||[[전라북도]] [[전주시]] 다가 82 || ||<|1> '''사망''' ||몰년 미상 || || '''직업''' ||독립운동가 || || '''상훈''' ||대통령표창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제강점기 당시 전라북도 전주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2019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생애 == 강준구는 1898년 10월 13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가 시작되었고 [[인종익]]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임무를 맡고 전주에 도착하였다. 이후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의 교사, 학생, 천도교·기독교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비밀리에 계획하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인쇄하고 독립선언서 수천매를 배포하였다.[*출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954916|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 3월 13일 전주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학생과 종교인 등 약 150여 명은 남문 밖 전주공립제2보통학교에 집결하여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강준구도 군중들과 함께 현재의 전동과 중앙동 일대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남문 밖 장터와 중심 시가 일대를 행진하였다.[*출처] 이로 인해 만세시위가 벌어진 당일 강준구는 일제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출처]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