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나무위키에 등재된 대한민국의 성공회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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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width=30&height=30]]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ffffff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 || 704호 ||<|2> ← || '''705호''' ||<|2> → || 706호 || || 태안 동문리 근대한옥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제대 및 세례대''' || 문경 가은양조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강화성당 세례대1.jpg|width=100%]]}}}|| ||<:> '''강화성당 내부 세례대'''|| ---- 사진 중앙에 보이는 석재 구조물이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는 세례대[* 아래는 이전에 있던 희미한 사진의 파일이다. [br] [[파일:attachment/GSinner.jpg]]]이다. 사진에는 오른쪽부터 修己[* 수기. 몸을 바르게 하고]/洗心[* 세심. 마음을 깨끗이 하고]/去惡[* 거악. 악을 제하고]/作善[* 작선. 선을 행하자.]이라고 한자로 새겨 교인들의 마음을 다잡게 한다. 이와 유사한 [[바실리카]]-한옥 건축물로는 같은 지역의 [[온수리성당]], 충청북도 청주에 위치한 [[수동성당]] 등이 있다. 특히 수동성당은 찾아가기가 까다롭긴 해도[* 교동로47번길 33, 순위치는 청주의 번화가인 성안길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다만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작정하지 않고 찾아가기는 좀 거시기하다.] 외벽 등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꽤 예쁘다. == 여담 == *강화도에는 같은 이름의 [[천주교]] 성당도 있는데 하필이면 직선거리로 200m 안팎되는 근접거리에 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그냥 강화성당이라고 검색하면 천주교 강화성당이 주로 잡히며 '[[성공회]] 강화성당'이나 '강화읍성당'이라고 검색해야 이 성당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두 성당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찍고 가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제대가 전례적 동쪽(Ad Orientem)을 향하고 있는 벽제대이기에 현재 감사성찬례도 전례적 동쪽을 향한 채 집전된다. 감사성찬례 자체는 [[성공회 기도서|성공회 기도서 2004]] {{{-2 (2018년 개정판)}}}에 따른 감사성찬례이다. *한 달에 한 번 켈틱 감사성찬례를 거행한다. *토착화 성당답게 사용하는 종도 전통적인 범종이다. 범종의 표면에는 연꽃 문양이나 비천상, 보살상 등 불교적인 이미지 대신 십자가를 넣었다. 당목으로 범종을 치는 당좌 부위에도 전통적인 연꽃 장식 대신 십자가 문양을 넣었다. 원래 1914년 영국에서 가져온 서양식 종을 사용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태평양 전쟁]] 물자로 쓰겠다는 이유로 강제 반출당하고[* 당시 일제는 성당의 종을 뜯어가는 것도 모자라서 성당 정문 앞 계단의 난간까지 뜯어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웃 종교인 천주교는 서울 [[명동성당]]의 제대 앞 철제 영성체 난간이 통째로 뜯겨나간 바 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일본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강화성당 축성 110주년을 맞은 2010년에 원형대로 난간을 복원해줬다.] 1989년 성당 신자들이 모금하여 현재의 십자가 장식 범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범종 밑에 명동(鳴洞)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종을 치는 소리가 더 은은하게 멀리 퍼지도록 범종 밑으로 움푹 패인 공간을 만들거나 항아리를 묻는데, 이를 명동(鳴洞)이라 부른다. 일본이나 중국에 없는 우리나라식 방법이다.] *18~19세기 당시 주류 [[성리학]]에 밀려, 하곡 정제두와 그의 제자들이 강화도에서 '강화학파'를 이루어 [[양명학]]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당시 유생(儒生)들 사이에서는 성리학(주자학)만을 바른 학문으로 여기고 양명학을 이단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성리학 내에서도 서로 [[당파싸움|편을 갈러 싸우기에 바빴으니]], 아예 결이 다른 유학이었던 양명학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19세기 말 강화도에서, 지식의 실천을 강조하던 유교 학파인 [[양명학]]과 포용성이 강한 기독교 종파인 [[성공회]]가 서로 조우하게 되었던 것[* 양명학의 거두이자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 선생은 양명학의 양지(良知)라는 개념을 기독교의 '성령'과 비교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결국 박은식의 양지론은 양명학의 기반 하에서 기독교의 '성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을 가진 신으로의 개념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前 [[성공회대학교 총장]] [[이정구(신부)|이정구]] 어거스틴 신부[* 후에 본 성당의 관할사제를 잠시 맡았다.]는 강화읍성당은 양명학과 성공회 신학의 융합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다. >성공회의 포용주의는 강화에서 꽃피운 하곡학(양명학)의 포용성과 조우함으로써 국내 다른 지역의 한옥 성당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유교와 불교와 무속이 상호융합된 토착화 양식으로 자연스럽게 태동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당 아래쪽에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으며 성당 주차장 방향의 도로 윗쪽으로 가면 산으로 이어진다. 성당 근방에 초등학교가 있으므로 차량으로 진입시 서행하자. *건축 당시 사용한 도면이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애시당초 '''도면이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편수가 이 성당을 지었는데, 도면 없이 그냥 지은 건물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이야 투시조사 등 비파괴방법으로 재현한 도면이 있으니까 안심해도 좋다. *2009년에 극우성향 [[감리회]][* 강화도 인구 중 35% 가량이 감리회 교인으로 강화도 내 최대 종교이다. 감리회와 성공회는 같은 [[개신교]]이고, 감리회 자체가 성공회에서 파생된 교회인데도 본토와는 달리 강화도에서는 의외로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근본주의 극우성향의 몇몇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가톨릭]]은 물론이고 [[성공회]]와 [[WCC]]성향의 교회들까지 디스하기도 한다(...)] 신자가 방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100년이 넘은 기독교 건축물이 순식간에 사라질 뻔했던 것이다. [[감리회]] 자체는 [[성공회]] 저교회파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로서 [[에큐메니즘]] 운동에 적극적이지만, 한국의 감리회가 일부 근본주의 성향 목회자들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조금 있다 보니, 몇몇 몰지각한 신자가 이런 짓을 저지르려 한 듯하다.[*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찬반 여부를 접어두고라도, [[방화]]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중도~진보 성향의 교단이지만, 근본주의나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는 교인이나 목회자가 몇몇 있다. *홍영선(베드로) 신부가 성당을 개보수하였는데, 몰지각한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개독교]]-- 목사--[[먹사]]--들이 몰려와서 [[단청]]을 트집 잡아 사찰을 본따 만든 마귀의 건물이고 사탄의 집이라며 시위를 하기도 했었다. --[[단청]]이 있으면 마귀의 집이라니, 그럼 우리네 전통 가옥들은 그럼 뭐가 되는지...--전국 곳곳을 다녀보면 한옥으로 된 개신교 예배당도 생각보다 꽤 많다. *[[알쓸신잡]] 시즌3에 [[김영하]], [[유희열]], [[유시민]] 작가가 방문했다. 같은 방송에서 [[온수리 성당]]을 찾아간 [[김진애]] 박사가 두 성당의 건축양식을 비교해 설명했다. *[[1박 2일]] 시즌4 1주년 프로젝트 특집 때 [[김선호]], [[김종민]], [[딘딘]]이 이곳에서 홍보영상을 찍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미사 중에는 관광 목적의 성당 출입이 금지된다. 다만 이웃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의 경우 미사 참례를 허용하며 영성체도 가능하다. [[분류:성공회 성당]][[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분류:성공회 서울교구]][[분류:강화군의 문화재]][[분류:템플릿/성공회]][[분류:근대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