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구려 요동방어선)] [[파일:goguryeo_seong.jpg]] 고구려 지도와 개모성의 위치 [목차] == 개요 == {{{+2 蓋牟城}}} [[요동]] 지방에 있었던 [[고구려]]의 옛 성으로 현재 [[중국]]의 [[랴오닝성]] [[선양시]]에 속해있다. [[고구려]] 때에, 랴오허 유역의 선양 북동쪽에 있던 성으로 [[보장왕]] 4년(645년)에 중국 당나라의 [[이세적]]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안시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이 성을 함락하였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개모성은 요동성의 동북쪽에 있다. 요하 유역 심양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상세 == [[당나라]]의 1차 침입 때 가장 먼저 함락된 성이다. 644년([[보장왕]] 3년) 7월 [[태종(당)|당태종]]은 영주 도독(營州都督) 장검(張儉)에게 시위와 정찰을 목적으로 국경주둔 병력을 이끌고 랴오둥을 공격하게 했다. 그해 11월 마침내 고구려 원정군을 일으켜 [[이세적]]이 이끄는 군대는 육로를 통해 요동으로 향하고, [[장량(당나라)|장량]]이 이끄는 군대는 해로를 통해 [[비사성]](卑沙城)을 경유하여 평양성으로 향할 계획을 세웠다. 645년 1월 1차 집결지인 유주(幽州)에 도착하여 침략의 길에 올랐다. 당태종은 육군 [[주력부대]]와 합치기 위해 2월 뤄양을 출발했고, 요하를 건너 고구려 국경을 침입했다. 고구려의 [[현도성]]이나 신성은 당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냈으나,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요동도행군은 15일 주력군을 신성과 요동성 사이에 위치한 개모성으로 이동시킨다. 상대적으로 쉽게 공략할 수 있는 성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집중공격을 받은 개모성은 당나라 장군 [[강행본]]을 사살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을 쳐서 함락시켜, 1만 명을 사로잡고 양곡 10만 석을 빼앗았으며, 그 땅을 개주(盖州)로 삼았다. 이로써 고구려 남녀 2만 명과 양곡 10만 섬(石)이 당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의 해군은 [[비사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분류:고구려/건축]][[분류: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