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정치범수용소)] ||<-2> {{{-2 '''[[북한|[[파일:북한 국기.svg|height=15]]]] [[평안남도|{{{#white 평안남도}}}]]의 [[정치범수용소/북한|{{{#white 정치범수용소}}}]]'''}}}[br]{{{#!wiki style="margin: -10px -10px" || [[북한|[[파일:북한 국장.svg|height=60]]]]||'''{{{+1 개천 제14호 관리소[br]价川第十四號管理所}}}[br]{{{-2 Kaechŏn 14th Internment Camp}}}'''[* 'internment'를 쓰는 이유는 [[개천교화소]]가 있기 때문이다.]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개천 수용소_구글 어스.png|width=100%]]}}} || ||<-2> {{{-1 '''▲ 개천 제14호 관리소의 위성 사진'''}}} || || '''다른 이름''' ||개천수용소{{{-1 (价川收容所)}}} || || '''설립''' ||[[1959년]] || || '''목적''' ||✔ 체제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정치|숙청]] 및 [[보복|응징]][br]✔ 사회로부터 격리함으로써 체제 오염 방지[br]✔ [[정치범]] 활용을 통한 [[착취|노동력 착취]] || || '''규모''' ||{{{-2 부지면적}}} 155㎢[* 수용소를 확장했다는 의혹이 있다.][br]{{{-2 수용인원}}} 15,000명 || || '''상위 조직''' ||[[국가보위성|[[파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보위성 휘장.png|width=20]] 국가보위성 농장감시국]] || || '''운영 여부''' ||'''운영 중''' || || '''주소''' ||{{{#!wiki style="margin: -3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개천 수용소, 너비=100%, 높이=250)]}}} ---- {{{#!wiki style="padding: 2px 10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e40001; color: white" '''개천 제14호 관리소'''}}} {{{-2 ([[평안남도]] [[개천시]] 외동리)}}}[*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개천군 봉동면 중리, 오봉리, [[덕천시|덕천군]] 잠상면.]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 [[평안남도]] [[개천시]] 외동리에 있다. 일명 ''''개천수용소''''로 불린다.[* [[개천교화소]]는 별개의 시설로서, '개천 1호 교화소'이다. 이 두 시설은 대략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동강]]을 따라 [[대건선]]이 통과하며 [[외동역(대건선)|외동역]]이 있다. == 특징 == * [[https://stimsoncenter.maps.arcgis.com/apps/webappviewer/index.html?id=7e97efe658a44f78950c14d3b126a1dd&marker=126.06341194344564%2C39.56940665475606%2C%2C%2C%2C&markertemplate=%7B%22title%22%3A%22Outer%20Border%22%2C%22longitude%22%3A126.06341194344564%2C%22latitude%22%3A39.56940665475606%2C%22isIncludeShareUrl%22%3Atrue%7D&level=16|38노스의 시설 지도(영문)]] 혁명화 구역이 존재하는 [[요덕 제15호 관리소]], [[개천 제18호 관리소]]와는 달리 이곳은 철저한 '''완전통제구역. 석방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완전통제구역은 처음부터 '''수용자를 가둬두고 착취하다가 죽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나치]] 수용소와 동일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수감된 사람은 처음부터 짜낼 수 있을 때까지 짜낸 다음 죽도록 방치해두는 노예로 취급되며, 이는 수감된 경우와 현지에서 태어난 경우 모두 동일하다.] [[대건선]] [[외동역(대건선)|외동역]] 인근에 있으며 [[대동강]]이 수용소 남쪽을 가로막고 산이 수용소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개천시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넓이 155㎢, 수용인원 1만 5천 명.[* 5만 명이란 설도 있는데 산악지대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무리가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Human_rights_in_North_Korea#Internment_camps_for_political_prisoners|출처]]] 이 155㎢라는 면적이 '''[[서울특별시]]의 1/4'''이며 [[개천시]] 전체의 면적의 1/5 수준이기 때문에 사실 신뢰하기에는 충분히 무리가 갈 만한 수치지만, [[독일]]의 [[슈피겔]] 지에서 위성 사진으로 표시한 [[명간 제16호 관리소]]의 충격적인 넓이를 보면(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고) 이 넓이가 신뢰할 만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동강이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18호 수용소인 [[개천 제18호 관리소]]와는 직선 거리상으로만 놓고 보면 불과 3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수용소의 분리 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수용소 인근에서 대동강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은 [[대건선]]의 철교를 건너는 것뿐이다. '''그쪽에도 [[개천 제18호 관리소|수용소]]가 하나 있다는 문제만 빼면'''.[* 개천 제18호 관리소의 경우 본래 완전통제구역으로 여겨졌으나 이곳에서 석방된 뒤 [[탈북]], [[한국]]에 온 김혜숙은 이곳이 혁명화구역이라고 주장한다. 완전통제구역일 경우 김씨 일가의 아주 특별한 사면 조치 외에는 살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증언이 맞다면 석방되어 나온 만큼 혁명화구역이 아니라고 보기도 어렵다. 참고로 개천 제18호 관리소는 2013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해체되었다고 결론이 났지만, 이후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개천시]] 쪽으로 축소 이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포로]]가 된 미군이나 [[영국군]]도 이곳에 수용되었다는 설이 있다고 하지만[* 증언 당사자도 직접 보거나 이야기한 게 아니라 그냥 풍문으로 들은 것.] [[6.25 전쟁|한국 전쟁]] 당시 포로 관리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51년부터 포로 관리는 100% [[중국군]]에 이관되었다. 이미 20명 이상의 자발적 미송환자를 확보한 중국의 뜻을 어기고 북한이 임의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인 포로를 억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 물론 한국 전쟁 전후로 극동에서 격추된 후에 석연찮은 이유로 미귀환한 조종사들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억류되었다는 의혹과 증거가 있다.] 오히려 [[월북]] 미군이나 석연찮은 이유로 외국에서 실종 납치된 외국인이 여기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80년대 월북한 미군의 경우 다른 월북 미군과는 달리 대외 활동도 없었으며, [[미국]]의 [[가족]]들에게 '''대동강에서 [[수영]]하다 죽었다'''는 통보와 함께 유해나 묘지 사진도 없이 처리된 경우도 있는 걸 보면... [[http://www.nkd.or.kr/news/story/view/475|출처]]. [[김용#s-2.1.1|김용(가명)]]이 탈북에 성공한 후 인터뷰한 기사. 신분을 밝히지 않기 위해 쓴 가명이다. 그가 살아 남을 수 있던 건 14호로 수감되기 전 친분이 있던 사람이 손을 써서 1~2년새에 18호 혁명화 구역으로 옮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18호에서도 혹독한 취급을 받다가 어머니가 사망한 계기로 탈출해서 탈북에 성공했다. 현재 [[신동혁]]의 증언들이 거의 거짓으로 밝혀진 마당에[* 심지어 신동혁은 수용소 수감자 출신도 아니었고 해제민, 즉 수용소 근처에 있는 출소자 마을(이들은 북한 내에서도 공민으로 분류된다)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도 "'''거짓으로 악을 이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완전통제구역 출신 수감자 중 유이한 생존자이다.[* 다른 한 명은 [[요덕 제15호 관리소]]에 수감되었던 김영순. 그녀는 [[김정일]]의 내연녀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1970~1978년까지 수용소 신세를 져야 했는데, 사실 그녀는 첫 5년 동안은 혁명화구역에서 수감 생활을 했고, 완전통제구역에 있던 나머지 3년 동안은 파견근로자로서 작업반장으로 일했기에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 다른 완전통제구역 출신으로는 [[안명철]]이 있으나 이쪽은 보위부 요원이자 수용소 경비원이었지, 수감자는 아니었다.] 링크를 따라가면 여러 가지 충격적인 일화가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처절한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체육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농구]] 선수가 있는데 아버지가 지주였던지라 이 수용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수용소의 참상은 [[정치범수용소/북한]] 항목에 나와 있으니 잘 알겠지만 먹을 것이 극도로 부족한데, 이 농구 선수가 소 꼬리로 만든 [[채찍]]을 물에 삶아서 먹었다. 그러자 열 받은 감시관이 죽도록 매질하고 변소에서 [[회충]]을 억지로 먹인 것. 결국 그는 3일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신동혁]]이 쓴 <북한 정치범 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책 역시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동혁]] 항목에 보충된 것처럼 신동혁은 실제로는 개천 수용소 인근이지만 덜 가혹한 [[개천 제18호 관리소]]에 수감되었으며, 개천 수용소에 대한 그의 증언 일부가 심하게 과장되었음을 본인이 시인하였다. 이후로도 14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했다가 다시 18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하는 등 주장이 계속 바뀌고,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인해 거짓말이 여럿 드러나면서 현재로서는 거의 신빙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는 칼럼에서 그가 일반적인 수감자가 아니라 해제민 출신으로 보았다. [[http://news.donga.com/3/all/20150127/69297930/1|#]] 해제민이란 수용소에서 죄수 신분은 벗어났지만 북한에서는 주소를 두려면 받아줘야 돌아갈 수 있는데 온 지 오래되거나 범죄자라 받길 거부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계층을 말하는 것으로, 일단 죄수가 아니기에 [[적대계층|천민 취급은 받긴 하지만]] 일단 북한의 공민으로 인정은 받으며 수감자보다는 덜 감시 받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형기란 말을 쓸 수 없는 게 북한 수용소는 수용자가 무슨 죄목으로 잡혀 왔는지, 몇 년을 살아야 하는지 형기를 알려주지 않는다. 2016년에 사격장과 양식장을 설치하는 등 시설을 확장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c704c131c0acc9c4-d558b298c5d0c11c-bcf8-bd81d55c/satellitenk-09282016131930.html/ampRFA|#]] === 참고 링크 === * [[외동역(대건선)|외동역]] * [[정치범수용소]] == 기타 ==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의 등장인물 송중호(코드명 베를린)가 탈북 실패 후 수감되었던 장소로 나온다. 그렇게 수감되고 25년만에 송중호는 추종자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켜 경비들을 살해한 후 수용소를 나왔다. [[분류:정치범수용소/북한]][[분류:평안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