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임진왜란]] 때 [[경주읍성]]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 == [include(틀:임진왜란 전투 목록)] === 제1차 경주 전투 === 1592년 9월 25일(음력 8월 20일). 당시 경주읍성을 지키고 있던 것은 [[후쿠시마 마사노리]] 휘하의 5군 병력.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은 의병장 [[권응수]], 정세아의 5천명의 병력과 관내 읍병을 합쳐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이 차지한 경주읍성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오히려 왜군이 북문으로 나와 조선군 600명을 사살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박진은 [[안강읍|안강]]의 본진으로 후퇴했다. === 제2차 경주 전투 === 한 달 뒤인 10월 12일(음력 9월 8일)에 박진은 다시 군사를 정비한 후 관군 5천명을 이끌고 경주읍성을 다시 공격했다.[* 참고로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 이때는 [[비격진천뢰]]와 [[화차(무기)|화차]] 등을 이용해 막강한 화력을 투사해 경주읍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경상도]] 지역의 왜군들을 해안 쪽으로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조총]]이 야간 공격 시에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도 한 몫을 했다.] 당시 일본군은 이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정한위략」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적진에서 [[비격진천뢰|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하자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같이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는 폭풍에 날아갔다. 기이하고 놀라서 [[서생포왜성|서생포]]로 돌아왔다." == 한국전쟁 초반에 벌어진 전투 == 공식 명칭은 [[안강-기계 전투]]이며, 경주시 안강읍과 포항시 기계면 일대에서 북한군이 경주로 침입하려는 걸 두고 싸워서 경주 전투로도 불리고 있다. 다만 이 전투는 위와 달리 경주 시가지에서 벌어지진 않았다. [[분류:임진왜란/전투]][[분류:공성전]][[분류:1592년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