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1.jpg]] [[https://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794337&imageUrl=https%3A%2F%2Fdbscthumb-phinf.pstatic.net%2F2644_000_11%2F20180921200549214_BUFZQAAC4.jpg%2Faaeac54f-339f-41.jpg%3Ftype%3Dm935_fst_nce%26wm%3DY&categoryId=46619&mode=simple|entry&query=&authorId=|사진 출처 :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북 경주 황남동 제82호분 동총 서총 금제이식]]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황남리 고분군 내의 제82호분에서 발견된 4세기 후반 ~ 5세기 초 [[신라]]시대의 금귀걸이들. 현재 어느 곳에 소장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 내용 ==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2.jpg]] [[조선총독부]] 경주 황남리 제82호분, 제83호분 고적조사보고서 - 소화 6년도 고적조사보고서 (1937년 / 단행본) (『慶州皇南里第82號墳第83號墳調査報告-昭和六年度古蹟調査報告』(有光敎一, 朝鮮總督府, 1935)에 실려있는 유물 사진 중 하나.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6-1번지를 중심으로 422,908㎡ 대지 면적에 조성되어 있는 4세기 후반 ~ 5세기 초 [[신라]]시대 고분군인 경주 황남리(황오동) 고분군 내에 위치한 82호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귀걸이]] 일체로, 귀걸이들의 제작 연대는 무덤군의 조성연대와 동일하게 4세기~5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황남동 고분군은 경주분지 중심에 있는 대고분군 가운데 주고분군으로 노동동(路東洞) 고분군과 노서동(路西洞) 고분군에서 남동쪽인 [[경주 월성|월성]](月城)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분군 일대 31,565평이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이후 2011년 7월 28일에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경주황오리고분군(사적 제41호), 경주인왕리고분군(사적 제42호)과 함께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경주고분 일련번호로는 90~114호, 151~155호 봉토분 30기가 이 고분군에 속하며, 이중 82호분과 83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귀걸이들이 발견된 82호분은 동총(東塚)과 서총(西塚)으로 구성된 쌍총인데 모두 주부곽식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현재 이 유물들의 자세한 행방은 알 수 없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어 사라졌거나 혹 반출되지 않았다면 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경주박물관]]의 수장고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황남동 고분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최초 발견된 30여기 외에도 1973년 고분공원 조성 당시 담장부지를 발굴하던 중 지상에는 흔적이 없었던 지하 고분 수백 기가 추가 확인되기도 했다. 아직 이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나중에 추가로 금귀걸이들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3.jpg]]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4.jpg]]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5.jpg]]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6.jpg]]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7.jpg]] [[파일:경주 황남동 82호분 금귀걸이8.jpg]] 조선총독부 보고서에 실린 발굴 당시의 사진 및 유물 모습.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황금 귀걸이들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