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jpg]] [[https://twitter.com/gmuseum7534/status/669740570592436224|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공식 트위터 - 신라의 여인상]] [목차] == 개요 == 7세기 초 신라의 무덤인 [[경주 황성동 고분]]에서 발견된 [[한국]]의 여인상. [[신라토기#s-3.3|신라토우]]의 일종이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4.jpg]] [[http://sldict.korean.go.kr/front/museum/museumView.do;sldictserv=4fntpDJMQHyWQ0t3Ry5RC4CN6Fydlp9ljwNwJqL5TpLdJ61Q4hV1!-822976208?origin_no=24744&category=MUE004&top_category=&searchWay=museum_nm¤t_pos_index=74&searchCondition=museum_nm&searchKeyword=&pageIndex=8&pageJumpIndex=|사진 출처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여인상]] 하단의 내용은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9/2017082903114.html|[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8] 포클레인 발톱 피한 '수로부인'의 고운 자태]] 등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1987년, [[경상북도]] [[경주시]] 황성동 유림 마을에 위치한 [[경주 황성동 고분|황성동 고분(隍城洞古墳)]]에서 발견된 7세기 신라시대 여인상이다. 황성동 고분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용해로적(鎔解爐跡) 및 단야로적(鍛冶爐跡) 제철유적으로, 2020년 현재까지 발견된 [[삼국시대]] 철·철기생산 유적 중 그 연대가 가장 오래된 곳이라 사학자들에게 매우 유명한 곳이다. 신라시대에 사용된 송풍관의 잔해(送風管片), 주조쇠도끼의 거푸집 등이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막대하다. 원래는 [[십이지]]석와 토용 발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주 용강동 고분과 비슷한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컸던 무덤이었는데 1987년 당시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주]] 매설공사 도중 이 고분이 우연히 발견되자, 공사가 지체될 것을 우려한 건설회사 측이 몰래 [[포크레인]]으로 유적을 두 번에 걸쳐 무참히 파괴해버렸다. 돈을 쫓은 조직적인 파괴로 인해 [[국립경주박물관]]과 [[동국대학교]] 연구진이 급히 도착했을 땐 이미 고분과 유물 대부분이 산산조각난 뒤였다. [[파일:경주 황성동 수로부인 여인상3.jpg]] 이 여인상은 분노에 찬 조사단이 파괴된 유물들을 조심스레 수습할 때 발견되었다. 당시 조사단 학예실장은 7세기에 만들어진 이 신라 여인상을 보고 비슷한 시기 [[미인]]으로 유명했던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떠올렸고 이후 이 토용의 애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신라의 여인은 오른손에 술병을 들고, 왼손으로는 입을 가리고 있다. 실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에 입은 옷을 표의(表衣)라 하는데, 위아래가 하나로 이어진 원피스 같은 옷이다. [[통일신라]] 시대 여성들의 옷은 소매가 길어 웬만해서는 손을 볼 수 없었다. 이 여인상의 표의도 마찬가지다. 이는 당시 여자들이 손끝을 내보이는 것을 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여자들은 바깥나들이를 할 때 반드시 한삼(汗衫)을 저고리 위에 걸쳐 손을 가렸다. 또한 여인상의 아랫단을 보면 발끝이 살짝 나와있는 보이는데 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여성들이 신코가 있는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인은 쪽머리를 하고 있는데, 중앙에 가르마를 하고 양옆으로 뒤로 넘겨 뒤통수에 쪽을 해놓았다. 또한 입고 있는 [[원피스]] 위에 띠를 둘렀는데, 그 자리가 다른 나라 의복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허리춤이 아니다. 가슴 바로 아래쯤에 띠를 둘렀고, 이것으로 보아 당시 신라 여인들은 띠를 위로 올려 잡아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선]]시대 한복 치마끈 매는 자리와 같다. 원래는 중국에서 유래된 풍습인 [[입 가리고 웃기|입을 가리고 웃는 행동]]이 보편화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현대에도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인데 이 풍습이 굉장히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세기에 만들어진 신라의 여인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