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행정구역]] [Include(틀:조선의 행정구역)] ||<-4> '''[[파일:조선 어기.svg|height=15]] [[조선|{{{#000000,#dddddd 조선}}}]]의 [[도호부|{{{#000000,#dddddd 도호부}}}]]'''[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5px 0" '''{{{+1 경흥도호부}}}'''[br]慶興都護府[br]{{{-1 Gyeongheung-bu}}}}}} ||}}} || ||<-4> [[파일:대동여지도 경흥부.jpg|width=100%]] || ||<-4> [[파일:1872년 경흥지도.png|width=100%]] || ||<-2> '''관아 소재지''' ||<-2> 함경도 경흥부 읍사(邑社) || ||<-2> '''하위 행정구역''' ||<-2> 7사 || ||<-2> '''인구''' ||<-2> 1만 4008명[* 1789년 『호구총수(戶口摠數)』의 기록을 기준으로 함.] || ||<-2> '''마지막 경흥부사[* 경흥군수]''' ||<-2> 김창수(金昌洙)[* [[1906년]] [[8월 12일]]에 [[승정원일기]]에서 기록한 마지막 경흥군수.] || [목차] [clearfix] == 개요 == >'''周國 大王이〮 豳谷애〮 사〯ᄅᆞ샤〮 帝業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ㅣ 慶興에〮 사〯ᄅᆞ샤〮 王業을〮 여〯르〮시니〮''' >---- >용비어천가 4장 中 조선시대 함경도 최동단에 위치했던 경흥지역을 다스렸던 도호부이자 조선의 개국을 이끈 [[이안사]]가 기반을 닦았던 고을. 경흥(慶興)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경사가 일어나는 땅이라는 뜻을 지녔을 정도이며, 함경도 고을들 중 조선왕실의 시초와 관련된 몇몇 고을 중 하나이다. == 문화 및 역사 == [include(틀:조선의 풍패지향)] 조선시대 함경도 최동단에 위치하였던 고을로, 경흥(慶興)[* 경사(좋은 일/조선 건국)가 일어나는 고을이라는 뜻을 지녔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조선왕조가 일어날 수 있었던 지역으로 인정받았다. 이 지역은 세종때에 6진 개척 후 1443년 설치되어 1895년에 전국적으로 행하여진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서 경흥군(慶興郡)이라는 지위로 바뀌어지기 이전까지 함경도 동북부 지역을 방어하고 다스리던 행정적, 군사적 요충지로 평가받았던 고을이다. 또한 녹둔도와 두만강 건너의 연해주 지역에도 영향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