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의학·약학 교수]][[분류:1926년 출생]][[분류:1997년 사망]][[분류:양양군 출신 인물]][[분류:춘천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국민훈장 동백장]] [include(틀:국민훈장 동백장)] ||<-2> '''{{{+1 고광욱}}}[br]高光昱''' || || '''출생''' ||1926년 3월 16일 || || '''사망''' ||1997년 11월 12일 (향년 71세) || || '''배우자''' ||류지순(柳志純)[* 서울대학교 약학과 졸업. 역사학자 [[류홍렬(역사학자)|류홍렬]] 전 서울대 교수의 장녀.] || || '''학력''' ||[[춘천고등학교]][br][[서울대학교 의과대학]] || || '''주요 직위''' ||제7대 [[한양대학교의료원]] 원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교수]]로서, 한국 [[소아과|소아과학]]과 [[콩팥|신장]]학의 발전, 의학교육의 개선, 그리고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설립과 발전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하였다. == 활동 == 1926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였고, 195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 민사처병원에서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한 후, 1955년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에서 조교로 근무하였다. 소아환자를 볼 때 가장 가슴이 아팠고, 다음 세대를 짊어질 어린이의 건강을 위해 소아과를 택하였다고 한다. 민사처병원에서 함께 근무하였던 하이너(Douglas Heiner)가 고광욱 교수의 인품과 능력에 감명 받아, 귀국 후 초청장을 보내와서 [[미국]] 유학(1956)을 하게 되었다. [[보스턴]]어린이병원에서 소아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미국소아과전문의 자격(1960)을 취득하였으며, 이 병원에서 수련 받은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뛰어난 업적 쌓은 덕분에 그 후 이 병원이 한국인에게 문호를 열었다고 한다. 이어서 [[하버드대학]] 갬블박사실험실에서 전임의로서 수분전해질 대사와 신장학을 연구하였다(1958∼60). 수련 기간 동안 마그네슘 대사에 대한 논문 등 무려 8편을 발표하였고, 전임의를 마치면서 미국소아과학회에서 `best papers'의 첫 번째 연자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귀국(1961)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하여 신장학과 수분전해질 대사 개념을 [[임상의학]]에 도입하였으며, 미국 NIH의 연구비를 받아 서울의대에 당시로서는 아주 크고 현대적인 [[생화학]] 실험실을 갖추고 [[칼슘]] 대사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 결과 한국인 [[모유]]의 화학적 성분에 대한 연구로 대한소아과학회 학술상을 수상(1967)하고, 소아의 칼슘, [[단백질]] 대사, 영양 그리고 의학교육에 공헌한 공로로 3.1문화상 학술본상을 수상(1974)하였다. 서울의대 교무담당 학장보로 부임하면서, 기초와 임상을 함께 교육하는 통합교육을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에 통합교육의 경험이 전무하던 시절, 하버드의대에서의 경험을 살려 첫 번째로 신장학 통합강의를 개설한 것이 그것이다. 또 강의 위주이던 교육과정을 실습위주로 바꾸고, 선택과목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의과대학 교육과정 개편을 주도하여 대한민국 의학교육의 발전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울의대 소아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서울대학교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재직(1975∼85)하는 동안 선진적인 연구와 교육, 소아과 진료의 전문화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소아과, [[외과]], [[병리과]], 진단방사선과 등과 함께 `문제증례토의회'를 개최하여 그 노력의 결실로 `증례중심의 소아과학'을 출판하였다. 주임교수 시절 매일 늦은 저녁 시간에 학생들의 수기를 점검하기 위하여 일일이 진찰 실습시험을 보았고, 이러한 엄격함과 자상함, 기초에 충실한 그 모습이 후학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1980년부터 홍창의 병원장과 함께 평생의 꿈이었던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건립을 준비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드디어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병원 초대 원장(1985∼89)으로 소아질환 진료의 전문화 시대를 열고, 소아특수질환의 전문적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 공로로 1988년 [[대한민국 훈장|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대한소아과학회 이사장(1982∼85), 회장(1985∼86)을 역임하고, 제4차 아시아 소아과학회(1982)를 유치하여 사무총장으로 활약하면서 대한민국 소아과학의 발전과 국제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은 신질환의 진료와 연구를 통하여 신장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대한신장학회 창립을 주도하고, 대한신장학회 회장(2, 3대, 1983∼86)을 역임하였으며, 1994년에는 대한소아신장학회를 창립, 초대회장으로 소아과학의 분과화와 전문화를 선도하였다. 국제소아신장학회 등에서 임원, 초청연자, 간행위원 등으로 활약하면서 많은 저명한 학자들과 폭 넓은 교류를 가졌다. 199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정년퇴임 한 후에는 1995년까지 한양대학교병원 의료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의대와 병원 발전에 헌신하였으며, 1997년 별세하였다. [[분류:제주 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