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쇼바라시 출신 인물]][[분류:1958년 출생]][[분류:우투우타]][[분류:우완 투수]][[분류:히로시마 도요 카프/은퇴, 이적]][[분류: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은퇴, 이적]] [[파일:external/kupilion.symphonic-net.com/kobayashi-seiji-83-co.jpg]] 현역 시절 [[파일:/image/001/2016/04/17/AKR20160417041800007_01_i_99_20160417160205.jpg]] 짧디 짧았던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 '''이름''' || 고바야시 세이지 [br] (小林誠二[* 은퇴 후 2010년까진 '''小林聖始'''란 명의를 사용했다. 발음은 동일] / Seiji Kobayashi) || ||<:> '''생년월일''' || [[1958년]] [[1월 22일]] ([age(1958-01-22)]세) || ||<:>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출신지''' || [[히로시마현]] 히바군 다카노정[* 現 [[쇼바라시]]] || ||<:> '''학력''' || 히로시마 현립 히로시마 공업 고등학교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데뷔''' || 1975년 드래프트 4위 ||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1975~1980, 1984~1988)[br][[세이부 라이온즈]](1981~1983) || ||<:> '''지도자''' || [[주니치 드래곤즈]] 2군 투수코치(2005~2011)[br][[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2016 ~ 2016. 04. 13.) || ||<-5><#0F8F2D><:>[[센트럴 리그|[[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width=30]]]] '''{{{#ffffff 1984년 센트럴리그 최우수 방어율}}}''' || || 1983년[br]후쿠마 오사무[br]([[한신 타이거스]])[br]2.62 || → || '''고바야시 세이지'''[br]'''([[히로시마 도요 카프]])'''[br]'''2.20''' || → || 1985년[br]코마츠 타츠오[br]([[주니치 드래곤즈]])[br]2.65 || [목차] == 소개 == 前 [[한화 이글스]]의 코치. == 선수 경력 == 1975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1981년에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해 [[중간계투]]와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고, 1982년 세이부가 [[퍼시픽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시합에서 마무리로 등판,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일명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 1984년에 다시 히로시마로 복귀, 중간계투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이닝을 넘긴 130과 2/3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20 11승 4패 9세이브를 기록하며 생애 첫 개인타이틀인 평균자책점왕을 수상했으며, 동년 [[1984년 일본시리즈]]에서도 1경기에 등판해 구원승을 기록, 사상 최초로 센트럴, 퍼시픽 양대리그에서의 [[일본시리즈]] 승리를 거둔 투수가 되었다. 허나 1984년의 혹사로 인해 팔꿈치 부상을 입어 1988년 은퇴하였다. 통산 기록은 평균자책점 3.70 29승 15패 20세이브. == 해설자, 지도자 경력 == 은퇴 후 해설자를 맡았다가 2005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2군 투수코치를 맡았으나, 당시 감독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2011년 퇴임하자 같이 퇴단. 그러다가 201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 저번 시즌 투수코치 [[니시모토 다카시]]에 이어서 한화 이글스의 1군 투수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4월 17일에 [[http://sports.media.daum.net/sports/baseball/newsview?newsId=20160417135555681|감독의 투수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팀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코치의 월권행위'''라는 비판을 남기고 떠난 시점과 [[김정준]] 전력분석코치의 갑질 논란이 일어난 시기가 너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또한 기사를 쓴 기자가 이경호 기자인데, 이경호 기자는 아이러브베이스볼에서 김정준 코치의 행위를 보도한 바로 그 기자다. 때문에 김정준 코치가 법적 대응 드립을 치자, 팩트로 받아친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런 고바야시 코치에 대해 [[박동희(기자)|박동희]] ~~파워블로거~~기자는 4월 18일 야시장에서 "한국야구를 우습게 본 것이다", "전쟁 중에 도망간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야구에 다신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극도로 주관적이고 논점 일탈적인 해설을 내뱉었다. 이것은 투수관에 대한 충돌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 고바야시 코치와 김성근 감독 사이의 쟁점을 흐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한국야구계에 몸담았던 고바야시 코치에 대한 극도의 무례라고 볼 수 있겠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박동희의 이 발언을 번역해서 고바야시 코치에게 알려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결국 박동희 기자는 23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김성근 감독을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295&aid=0000001527|#]] 그러나 싸늘한 시선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양쪽에서 까이는중) 귀국 후에는 J SPORTS 채널의 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바야시 세이지, version=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