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읍성)] ---- ||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145호}}}''' || || {{{+1 {{{#fff '''고창읍성'''}}}}}} {{{-1 {{{#fff 高敞邑城}}}}}}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fff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번지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 || '''{{{#fff 면적}}}''' || 199,972㎡ || || '''{{{#fff 지정연도}}}''' || 1965년 4월 1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 초기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고창읍성, 너비=360)]}}}}}}}}} || [목차] == 개요 == 고창읍성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위치한 [[읍성]]으로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읍성이기도 하다. '모양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현지인들은 고창읍성이라는 이름보다 원래 이름인 모양성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고창 군민들 스스로도 고창군의 아이덴티티로 생각하는 듯한 장소다. 고창읍성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고창읍성은 조선시대 단종 원년(1453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축조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벽의 둘레는 1,684m, 너비는 대략 4~6m이다. 많은 읍성들이 평지에 위치한 마을을 둘러싸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방장산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성 안은 평상시의 주거지가 아닌 유사시의 피난처로 계획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는 본래 22채가 있었다고 하나 모두 사라졌고 지금은 동헌, 군량고, 옥사(獄舍), 객사(客舍) 및 망루 등 15채의 건물들이 복원되어있다. 성벽 위를 세바퀴 돌면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실제로 돌아보면 산길이라 엄청 빡세다. 성벽을 타고 걷는다고 가정하면 1.21km로 이 동네 체육관 선수부의 훈련코스중 하나. 한바퀴만 돌아도 어지간한 산행급. 세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는게 아니라 '''무병장수할 만큼 건강한 사람'''이 세바퀴 돌 수 있는 것이라는 드립을 현지인들도 종종 친다.] == 기타 == 매년 10월이면 지역축제인 '모양성제'가 이 고창읍성 앞에서 열리는데 지역축제로서는 상당히 규모가 있으며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1973년부터 계속되어온 꽤 전통있는 축제다. 고창읍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 판소리 여섯마당[*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변강쇠 타령. 현재 변강쇠 타령을 제외한 다섯 마당이 전해 온다.]을 정초한 동리 신재효[* 영화 도리화가 (류승룡, 수지 주연)의 실제 인물. ]의 고택이 있으며, 바로 옆에 판소리 박물관이 있다. 현재는 군청 근처에 있는 고창여자고등학교[* 지역명이 붙어있지만 사립학교다. 고창고등학교는 공립.]가 예전에는 '''고창읍성 내에''' 위치했었다. 읍성 내에도 여고 터에 안내판이 있는데, 1986년에 성 보존을 위해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이전 당시 상황을 직접 본 고창 군민의 증언에 따르면 여고생들이 책걸상을 들고 줄줄이 읍성에서 나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고창읍성|한국어 위키백과: 고창읍성]]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3269&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창읍성]]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578923&cid=51945&categoryId=54990|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고창읍성]]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48218&cid=42865&categoryId=42865|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고창읍성]]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11254&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고창읍성]]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62403&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고창읍성]] == 사적 제145호 == *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VdkVgwKey=13,01450000,35|문화재청 홈페이지: 고창읍성 (高敞邑城)]]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 >이 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가 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창군, version=703)] [[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읍성]][[분류:고창군의 문화재]][[분류:성채/대한민국]][[분류:조선/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