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백제계 도래인]][[분류:백제의 유민]][[분류:몰년 미상]] '''谷那晋首''' 생몰년도 미상 == 개요 == [[백제]]의 인물.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인물로, [[백제부흥운동]]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 == 생애 == [[663년]] 음력 9월 24일, 곡나진수는 좌평 [[부여자신]], 달솔 [[목소귀자]], [[억례복류]] 및 백제 유민들과 함께 저례성(弖禮城)[* 훈독은 '테레사시'이며 현재 위치는 미상이다. 다만 여기를 거쳐서 일본으로 향했다고 기록한 점을 보아 서남해안 어딘가로 추정된다.]에 이른 후 다음날 [[일본]]으로 향했다고 한다. 백제부흥운동 당시 관직은 달솔(達率)이었다. [[671년]] 정월, 망명한 백제 인사들에게 관직이 수여되었는데 곡나진수는 대산하(大山下) 벼슬을 받았다. 일본서기 기사에 의하면 목소귀자, 억례복류와 함께 병법에 밝았다(閑兵法)라는 주석이 붙어있다. == 기타 ==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지명으로 곡나(谷那)[* [[진구 황후]] 52년(372년?) 9월 10일 기사에는 [[칠지도]]가 백제의 곡나철산(谷那鐵山)에서 얻은 철로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으며, [[오진 덴노]] 8년(397년?) 3월 기사에는 왜국이 빼앗은 백제의 영토로 [[침미다례]], [[지침국|지침]] 등과 함께 곡나(谷那)가 언급된다.]가 등장하는데, 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욕내군(欲乃郡: 현 [[전라남도]] [[곡성군]])과 같은 지명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곡나진수가 지금의 곡성 지역 출신임을 짐작해볼 수 있으나 확실한 사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