谷利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무장. == [[삼국지(정사)|정사]] == 215년에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오군은 열흘이 지나도 합비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또한 역병이 돌아 손권은 퇴각을 결정했는데, 이 때 [[손권]]은 선봉이 먼저 퇴각한 상태에서 소요진에서 [[진무(삼국지)|진무]], [[능통]], [[감녕]], [[여몽]], [[장흠]]과 1천기만을 이끌고 있었다. [[장료]]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급습해 진무가 전사하고 능통의 부대가 전멸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진교 남쪽이 철거되어 한 길 남짓해 널판지가 없어 퇴각할 길조차 막힌 상황이었지만 이 때 손권을 옆에서 모시는 급사로 있던 곡리는 말 뒤에서 안장을 꼭잡고 고삐를 늦춰잡게 한 다음에 채찍으로 말이 뛰는 것을 도와 드디어 진교를 건너뛰게 해 목숨을 건진 손권은 그를 도정후로 봉한다. 손권이 무창에 있을 때 장안이라는 큰 선박을 만들고 시험운행에 들어갔으며, 그 때 바람이 세차게 부니 곡리는 사공들에게 명해 번구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손권이 나주를 향하도록 하라고 말하니 곡리가 칼을 뽑아들고 사공들에게 말하길 >번구에 배를 대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곧바로 배는 방향을 틀어 번구에 닿았고, 바람이 너무 맹렬하게 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배는 운행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험 운행을 포기했으며, 일이 다 끝난 뒤 손권이 곡리에게 곡리가 물을 너무 무서워한 것 아니냐고 묻자 곡리가 무릎을 꿇고 답한다. >대왕께서는 만백성의 주인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경망스럽게 격랑이 부는 바람 앞에서 놀다가 화려하게 꾸민 누각이 만약에 전복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것은 사직이 우려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굳이 죽음을 무릅쓰고 만류했습니다. 이 말에 손권은 곡리를 소중히 여겨 두 번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경의를 담아 곡(谷)이라 불렀다. 충의에 마음이 두텁고 외곬이었고, 말함에 있어서 쓸데없는 말을 안했기에 손권이 곡리에 대한 총애와 신뢰는 상당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 [[삼국지연의|연의]] == 제2차 합비 공방전에서 아장으로 관직이 변경되어 등장한다. == 미디어 믹스 == || [[파일:곡리.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일러스트는 100만인의 삼국지의 [[관해(삼국지)|관해]]를 재활용했으며 능력치는 통솔 43, 무력 68, 지력 33, 정치 15, 매력 40이다. 개성은 혈로, 주의는 왕도, 정책은 방원강화 Lv 2, 진형은 방원, 전법은 철벽, 구축, 친애무장은 [[손권(삼국지 시리즈)|손권]], 혐오무장은 없다. 잡무관이지만 공격용 전법이 수상전용 말고는 하나도 없어서 전법의 서가 필요하다. [각주] [[분류:손오의 인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