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이란의 정치인]][[분류:1927년 출생]][[분류:1979년 사망]][[분류:이스파한 주 출신 인물]][[분류:테헤란]][[분류:총살형된 인물]] [목차] == 개요 == غلامرضا نیک‌پی 1927. ~ 1979. 04. 11.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의 정치인으로, 부총리와 [[테헤란]] 시장을 역임했다. == 생애 == [[1927년]] [[이스파한]]에서 아지줄라 닉페이(Azizullah Nikpey)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미국]] 유학파로 전 [[케르만샤]] 주지사였다. [[테헤란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1966년]] 주택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이 시기 [[호라산]]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그야말로 초토화된 적이 있었다. 이 때 닉페이는 도심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매우 큰 성과를 거두면서 현재까지도 "이란 역사상 최고의 재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1969년]] 테헤란 시장이 되었으며, [[1977년]]에는 상원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상원의원이 된 지 겨우 2년 만에 [[이란 혁명|혁명]]으로 군주제가 붕괴되었고, [[사법살인|새로 출범한 이슬람 공화국은 닉페이를 즉각 총살했다]]. 재판 과정에서 법정 대리인도 없었고, 발언권도 없이 처형되면서 적법성에 논란이 일었고, 이듬해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지정했다. == 여담 == 의외로 [[서울특별시]]와의 인연이 있다. [[1977년]] [[6월 27일]] 서울을 방문했는데, 이에 서울시는 서울과 테헤란의 서로의 도로명을 넣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리하여 삼릉로는 [[테헤란로]]가 되었고,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