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Наскальные рисунки курыканских воинов.jpg|width=400]] || || 암벽화에 새겨진 골리간(쿠리칸) 전사들의 모습.[* 사진 속 2번 그림은 쿠리칸족의 직계 후예로 추정되는 [[사하 공화국]]의 [[나라문장|국장]]으로 쓰인다.] || * 돌궐어: 𐰇𐰲𐰸𐰆𐰺𐰃𐰴𐰣 / Üçkurıkan[* 고대 튀르크어에서 야영지 및 진영을 '''Quri'qan''' 또는 '''Qoriyan'''이라고 불렀는데, 이로 말미하여 '[[3|세]] [[진영]]'을 의미한다고 추정된다.] * [[중국어]]: 骨利幹[* [[중고한어]]로 '''*kuət̚-liɪH-kɑn'''.] * [[러시아어]]: Курыканы * [[사하어]]: Курыкааннар [목차] == 개요 == [[철륵]]의 부족 중 하나로, '''쿠리칸(Kurykan)'''이라고도 불린다. 중국측 기록에선 한해의 북쪽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역이 [[안가라 강]] 남쪽에서 [[바이칼호]] 주변 지역까지 걸쳐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6~10세기까지 존재하던 [[https://en.m.wikipedia.org/wiki/Kurumchi_culture|쿠룸치 문화]]의 후예인 것으로 보이나 이에 관해 지금까지 여러 논쟁이 오가고 있으며,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의 무분별한 발굴과 빈약한 문서화로 인해 정확한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 생활상과 역사 == 기록에 따르면 이들이 사는 곳은 [[여름]]에 [[백야|해가 지지 않으며]], 정예 군사가 약 5,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골리간 영토 내의 자라나는 풀들 대부분 [[백합]]이었고, 명마가 자주 생산되었는데, 그 말은 머리가 [[낙타]]와 유사한데, 체격이 크다보니 하루에 수백 리를 주파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전에는 [[동돌궐]]과 [[설연타]]의 지배를 받았으나 이후 골리간이 [[당나라]]에 귀부하자 당은 강소밀을 파견해 그 영토를 '''현궐주'''로 삼았다. 골리간의 지도자 "사근(俟斤)"[* [[칸#s-1.2|칸]]의 일족에게 붙는 [[돌궐]] 칭호인 '[[궐특근|테긴(𐱅𐰃𐰏𐰤)]]'의 [[음차]]인 것으로 보인다.]은 사자와 함께 명마 10필을 당나라에 보냈는데 그 예를 가상히 여겨 그 말 마다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 한해도독부에 신속되었다. == 후예 == [[위구르 제국]] 멸망 이후 쿠리칸족들은 [[몽골 고원]]으로 이주해오는 [[몽골인|몽골계 민족]]들의 압박을 받으면서 [[14세기]]에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북상한 이들은 오늘날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하 공화국]]의 주류인 '''[[사하인]]'''이 되었으며, 잔류한 이들은 이후 [[부랴트인]]에 동화되었다. == 관련 문서 == * [[철륵]] * [[바이칼호]] * [[사하 공화국]] * [[야쿠트인]] [[분류: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