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서)] [include(틀:역대 한 황후)] [목차] 恭哀皇后 許氏 ( ? ~ 기원전 71년) == 개요 == [[전한]] [[선제]]의 황후이자 [[원제]]의 생모로 휘는 평군(平君). == 생애 == 아버지 허광한(許廣漢)은 창읍왕(昌邑王)의 낭(郎)을 지내면서 실수로 다른 낭의 안장을 자신의 말에 얹어서 도둑질한 것으로 몰렸는데, 이는 당시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기에 [[궁형]]을 받고 환관이 되었다. 이후 환자승(宦者丞)이 되었는데, 상관걸이 모반하였을 때 증거품을 찾아내지 못하여 액정(掖庭)으로 쫓겨나 폭실색부(暴室嗇夫)가 되었다.한편 [[선제]]가 즉위하기 이전에 아직 여태자의 손자로 취급받아 복권되지 못했던 시절에 허광한은 딸을 선제에게 시집보냈는데, 1년 뒤에 [[원제]]를 낳았다. [[창읍왕]]을 폐위시킨 [[곽광]]은 세적황손으로서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던 [[선제]]를 옹립하였고, 대신들은 황제를 옹립하는 공적을 세운 곽광의 딸을 황후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선제의 뜻에 따라 적처였던 그녀가 황후로 즉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곽광의 부인인 현(顯)은 딸을 황후로 세우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고, 공애황후가 다시금 임신했다가 병이 나서 진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 되자 궁중의 여의(女醫) 순우연(淳于衍)을 매수하여 공애황후를 독살하였다.[* 그 후 순우연도 처형당했다.] 공애황후는 3년 동안 재위하였고, 두릉남원(杜陵南園)에 장사지냈다. 이후 곽씨 일족이 주살되고 선제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허씨 일족은 조정에 등장하였고, 원제의 치세에 영화를 누렸다. [[분류:전한의 황후]][[분류:기원전 7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