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요사)] [include(틀:송사)] [include(틀:금사)] [목차] == 개요 == 郭藥師, 생몰년 미상 요나라, 송나라, 금나라를 섬긴 발해 유민. 상승군을 이끌었다. 《[[송사]]》에는 간신 열전에 포함되어 있다. == 생애 == 요동 철주 사람으로, [[발해]]인 출신이다. [[거란족]]의 [[요나라]]가 망조에 든 시기인 1116년 [[고영창]](高永昌)이 동경유수 소보선을 죽이고 대원국 황제를 자칭하고 요동 50여 주를 점령했다. [[천조제]]는 재상 장린(張琳)을 보내 토벌할 것을 명하나 심주에서 고영창을 지원하던 [[여진족]] 군대에게 패했다. 이에 천조제는 연왕 야율순을 도원수로 임명하여 요동 백성들을 원군(怨軍)으로 징집한다. 그러나 요나라가 원군을 성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란은 끊이지 않았던 데다가 오히려 요 정권에 위협이 되었다. 요나라는 2000명을 뽑아 4영으로 편성하고 곽약사, 장령휘, 유순인, 견오신으로 하여금 이를 각각 통솔하게 하였고 나머지 6000명은 금군으로 나누어 보냈다. 야율여견이 이들을 죽일 것을 주장하였으나 소간은 이에 반대한 덕분에 곽약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중경대정부와 서경대동부가 함락되는 등 요나라가 거의 멸망 위기에 처하자, 천조제는 서쪽으로 도망치면서 남경의 방어를 야율순에게 맡기고, 야율순은 이처온, 소간, [[야율대석]]과 함께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이때 곽약사가 이끄는 원군은 상승군으로 바뀌었다. 해상의 맹약 체결 후 [[북송]]의 [[동관(북송)|동관]]이 연경을 공략하나[* [[방랍의 난]]을 진압하고 막 올라온 상황이었다.], 오히려 대패하고 만다. 하지만 북요 정권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는데, 이처온 부자가 북송에 영토를 바치려 하나 소태후에게 주살당하고 결국 곽약사가 이끄는 상승군은 북송에 투항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송군은 [[유연경]][* [[남송]] 중흥4장 중 하나인 [[유광세]]의 아버지.]이 이끄는 군대가 대패하는 등 다 망해가는 요나라 군대에게 대패하는 추태를 보인다.[* 요가 망해가는데도 불구하고, [[연운 16주]]의 통치는 안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연운 16주의 한인들은 북송 사람들을 이민족으로 간주하였고 연운 16주의 한인들과 북요 정권은 북송 사람들을 무시했다.] 몇 번의 추태 끝에 금군이 연경을 함락하고 송군은 결국 연경을 되찾게 된다.[* 여기서 동관이 광양군왕으로 봉해진다. [[신종(송)|신종]]이 죽기 전 연경을 수복하는 자를 왕으로 봉한다는 유언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휘종에 의해 안원군승선사로 승진되었으나, 곽약사와 그 휘하 상승군은 북송의 복장이 아닌 요의 복장을 착용하였고, 사람들은 곽약사를 [[안록산]]과 같다고 평가했다. 이후 [[정강의 변]]이 발발하자 금군을 막았으나, 부장의 배신으로 인해 결국 [[금나라]]에 투항한 이후 완안씨 성을 하사받는다. 그러나 금군이 변경을 함락하지 못하고 철수한 이후 곽약사는 모종의 이유로 투옥된 뒤, 재산을 빼앗기고 만다. 이후 [[해릉양왕]] 시기 곽안국이 본 성을 되찾았다. == 평가 == >곽약사(郭藥師)는 요(遼)의 남은 서자요. 송(宋)의 여계(厲階)며 금(金)의 공신(功臣)이다. >----- >『금사』 [[분류:요나라의 인물]][[분류:금나라의 인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