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광주천자문.png]] {{{+3 光州千字文 }}} [목차] == 개요 == 6세기 중국 [[양(남조)|양나라]]의 주흥사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천자문]]에 한글로 새김과 음을 달아 [[조선시대]] [[광주광역시|광주]] 지방에서 간행한 책이다. 한문본 천자문이 우리 나라에 언제 처음 들어온 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 때 [[왕인]]이 논어 10권과 함께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적어도 삼국 시대에 들어와 통일 신라 시대엔 널리 보급됐다고 추정한다. 한글로 새김과 음을 단 천자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본 문서인 광주천자문이다.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책 끝에 있는 만력삼년월일광주간상(萬曆三年月日光州刊上)이라는 글귀로 보아 1575년에 전라도 광주에서 간행한 듯하다. 이 책은 현재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小倉文庫)에 소장 중인데, 이보다 조금 앞선 듯 보이는 일본 대동급문고본(大東急文庫本)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석봉천자문이나 또다른 한글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새김이 많다. 이는 지방 방언의 특징과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듯하여 국어사 연구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皇자와 帝자에 대해서는 '님금'이라는 훈을 달았으면서 王자에 대해 '[[기자(상)|긔ᄌᆞ]] 왕'이라는 '훈'과 '음'을 달고 있는 것이 [[백제]]의 왕호 [[건길지]]와 [[기자조선]]의 유사성을 연구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백제의 길지, 변한의 진지, 가야의 질지 등의 유사한 사례가 있다. 형용사 길다(일부지역 사투리에서는 질다)와 인칭어미 지/치/기/아치의 합성어로 긴 사람, 키가 큰 사람, 높은 사람을 일컫던 우리말로 추측할 수도 있다. 이는 진변한과 신라 및 가야의 한기, 간지 등의 큰 사람이라는 호칭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 이본 및 소장처 == ||이본 종류 ||연도 ||소장처|| ||원간본 ||1575년(선조 8년) ||일본 동경 대학 오구라(小倉)문고|| ||중간본 ||16세기말 ||일본 대동급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 == 원문 == * [[광주천자문/원문]] 문서 참조. == 외부 링크 == [[http://archives.hangeul.go.kr/scholarship/totalArchives/view/12659?searchEnable=1&keyword=%EC%B2%9C%EC%9E%90%EB%AC%B8&sorting=regDt&pm=by20&page=1|디지털 한글 박물관 - 문헌 정보]] [[http://archives.hangeul.go.kr/scholarship/archives/view/145?searchEnable=1&keyword=%EC%B2%9C%EC%9E%90%EB%AC%B8&sorting=regDt&pm=by20&page=1|디지털 한글 박물관 - 해제 및 이미지]] [[분류:조선의 도서]][[분류:훈민정음]][[분류:100대 한글 문화 유산]][[분류:해외 소재 문화재]][[분류:오구라문고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