蒯越 ?~214년 [목차] [clearfix]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로 [[유표]]와 [[조조]] 휘하의 문관을 지냈으며, 자는 이도(異度). 형주 양양군 중로현 사람으로 [[한신]]의 부하 [[괴철]]의 후손이라고 하며, 매우 잘생겼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괴량]]의 동생으로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다. == [[삼국지(정사)|정사]] == [[하진(삼국지)|하진]] 휘하에서 [[환관]]들을 죽일 것을 권하나 듣지 않자 '이놈은 가망이 없구나.' 라고 판단, 여량현령에 봉해달라고 하여 유표 휘하에 들어가서 활동한다. 유표가 [[채모]], [[괴량]], 괴월에게 족당의 도적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냐고 묻자, 괴량은 "인의면 모든 게 해결 됩니다. 군사 돌릴 생각 마세요." 라고 한 반면, 괴월은 "그놈들 꼬셔서 유인한 다음 나쁜 놈은 죽이고 아닌 놈은 군사로 활용해서 강릉을 정복하고 양양은 지킨다면 격문만 돌려도 형주 8군이 평정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유표]]는 괴월의 계책을 따르기로 하고, 적의 두목 15명 혹은 55명을 부른 다음 몽땅 다 죽여버린다(…) 그러자 잔당의 거의 대부분이 항복을 하는데 장호와 진생이라는 녀석만 저항을 하니 괴월을 보내 설득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장호와 진생은 삼국지연의에서 장호는 한당에게 진생은 손책에게 죽는다.] [[정사 삼국지]] 촉서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진세어에 따르면 괴월과 채모가 [[유비]]의 목숨을 노렸다. 눈치챈 유비가 화장실에 간다며 연회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유비는 [[적로]]를 타고 달아나다 물에 빠졌는데 적로를 날게 하여(?) 무사히 도망쳤다. 199년에 유선, 한숭과 함께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건의했다. 이 일의 사자로 뽑힌 한숭이 "나를 보내면 난 이미 조조의 부하가 되어있을 겁니다"라고 주의를 줬고 진짜 한나라의 직위를 받아온다. 결국 유표가 분노하며 무산. 208년에는 장릉 태수였고, [[유종(삼국지)|유종]]에게 [[한숭]], [[부손]]과 함께 항복을 권하고 이 공으로 광록훈이 된다. 여기서 조조는 [[순욱]]에게 "형주를 얻은 것은 기쁘지 않으나 괴월를 얻은 것은 기쁘오" 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썼다. 214년에 죽을 때 자기 집안을 조조에게 부탁했다. == [[삼국지연의|연의]] == 첫 등장은 [[유표]]가 [[원소(삼국지)|원소]]에게 편지를 받고 [[채모]]와 괴월을 보내 [[손견]]을 치게 할 때 나타난다. [[유표]]가 [[적로]]를 얻었을 때에는, 자기의 선형(先兄) [[괴량]]한테서 말 보는 법을 배웠다고 하며 그 말은 위험한 말이라고 조언한다. 덤으로 선형(先兄)의 의미가 죽은 형이기에 [[괴량]]이 죽었다는 것도 알려준다. [[채모]]가 [[유비]] 암살 계획을 세웠을 때는, [[문빙]]과 [[왕위(삼국지)|왕위]]를 이용하여 [[조운]]을 유비로부터 때어놓는 계책을 세운다. 그후 [[조조]]가 형주로 진격해오자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유종(삼국지)|유종]]에게 권하기도 한다. 유종이 결국 조조에게 항복한 후에는, 조조로부터 강릉태수 번성후에 봉해진다. 여기서도 조조는 '나는 형주를 얻은 것 보다 괴월을 얻은 게 더 좋다' 라고 한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괴월/기타 창작물)] [각주]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214년 사망]][[분류:상양시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괴월, d=2022-12-25 11:4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