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Kuge-machi_map.jpg|width=100%]] || || [[막말]]의 구게마치 || || [[일본어]] || [ruby(公家町, ruby=くげまち)] || [목차] == 개요 == [[근세]]의 [[교토고쇼]] 주위에 있었던 [[공가]] 저택 단지 일대로, 현재 [[교토교엔]]과 그 주변에 자리하였다. == 역사 == || [[파일:Heiankyo_landsat.jpg|width=100%]] || ||헤이안쿄와 현대 교토의 비교. 붉은 선 안쪽 영역이 옛 헤이안쿄 자리이고, 영역의 북동쪽 끝의 녹지 부분이 옛 구게마치 터인 [[교토교엔]]이다. || [[헤이안 시대]]에 세워진 토어문 동동원전([ruby(土御門東洞院殿, ruby=つちみかどひがしのとういんどの)])은 [[남북조시대(일본)|남북조]] 통일 후 [[교토고쇼]]가 되었다. 그런데 [[무로마치 시대]]부터 [[센고쿠 시대]]에 걸쳐 이곳은 황폐해졌는데, 교토에 상경한 [[오다 노부나가]]가 고쇼의 대규모 재건을 시작하였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쇼 주변까지 정비하였고, 이 일환으로 당상가들을 여기에 이주시켰다. 이렇게 하여 교토시내에 혼재돼있던 [[공가]] 저택들이 고쇼 주위로 모이면서 구게마치를 형성하였다. 이후 1708년에 호에이의 대화재가 발생하여 공가 저택 78채 및 다이묘 저택 24채와 고쇼 관리 저택 몇 군데가 소실되었다. 그 뒤 화재의 복원에 맞추어 주변에 주택가를 퇴거시키고 그 자리를 공가들에게 분배하여 오늘날의 교토교엔의 넓이 정도로 구게마치를 확장시켰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공가가 [[도쿄도 구부|도쿄]]로 이주하였고, [[화족]] 제도의 발족과 함께 화족들의 도쿄 이주가 의무화됨에 따라 공가 저택들이 빈집이 되면서 고쇼 주위의 구게마치는 폐허가 되었다. 이에 [[교토부]]는 고쇼 주위에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공터를 만들기 위해 공가 저택들의 철거 및 유적 정비를 개시하였고, 이로써 구게마치 터는 [[교토교엔]]이 되었다. || [[파일:Reizeike.jpg|width=100%]] || [[파일:Reizeike_residence.jpg|width=100%]] || ||<-2> 레이제이 가(冷泉家) 저택 || 구게마치 저택 중 헐리지 않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은 레이제이 가의 저택이다. 교토교엔의 북쪽에 인접해 있으며, 동·서·북 삼면은 [[도시샤대학]] 부지에 둘러싸여 있다. [[분류:일본의 없어진 건축물]][[분류:일본의 공가]][[분류:교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