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구리손 바실리오스.jpg|width=100%]] || || '''이름''' ||구리손 바실리오스[br](영어: Basil the Copper Hand, 그리스어: Βασίλειος ὁ Χαλκόχειρ)|| || '''출생''' ||미상|| || '''사망''' ||[[932년]]|| || '''직위'''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테마]]의 [[농민]]|| || '''반란 대상''' ||[[로마노스 1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의 반란자. [[로마노스 1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 행적 ==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테마]]의 평범한 [[농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동방 제국군을 이끌고 아랍군을 상대로 여러번 승리했지만 [[913년]] [[콘스탄티노스 7세]]를 상대로 반란을 꾀했다가 피살당한 [[콘스탄티노스 두카스]]를 사칭했다. 당시 가난에 찌들었던 농민들이 이를 믿고 따르자, 그는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를 돌며 반란을 선동했다. 그러나 지역 관리에 의해 생포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고, 어린 콘스탄티노스 7세의 후견인 노릇을 하던 [[로마노스 1세]]는 그의 손을 자르는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바실리오스는 제위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11세기]] [[역사가]] [[요안니스 스킬리치스]]에 따르면, 그는 잘린 손을 대체하고자 구리손을 스스로 만들었으며, 큰 칼을 손수 제작하여 사람들 앞에서 용맹을 뽐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이에 감명을 받아 추종자가 되었고, 그는 932년 2번째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엔 플레테이아 페트라 요새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고,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주변 지역을 약탈했다. 지역 수비대가 토벌하려 했지만, 바실리오스는 그들을 번번이 물리쳤다. 그러나 얼마 후 [[동로마군|정부군]]과 맞붙어 참패하였고, 또 다시 생포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로마노스 1세는 평범한 농민이었던 그가 자꾸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분명 배후가 있기 때문이라 믿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가하여 배후를 밝히고자 했지만, 바실리오스는 끝까지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았다. 결국 로마노스 1세는 배후를 밝히는 걸 포기하고, 바실리오스를 아마스트리아논에서 [[화형]]에 처했다. [[분류:동로마 제국의 인물]][[분류:93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