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공항)][[분류:중국의 공항]] ||<#802224><-2><:>'''{{{#white 구이린 치펑링 공항}}}[br] {{{#white Guilin Qifengling Airport }}}''' [br] {{{#ffffff 桂林奇峰岭機場 }}} || ||<-2><:>IATA: '''~~KWL~~''' / ICAO: '''~~ZGKL~~'''|| ||<-2><#802224><:>'''{{{#white 개요}}}'''|| || 국가 ||[[파일:중국 국기.svg|width=30]] [[중국]] || || 종류 ||군용공항 || || 주둔부대 ||[[남부전구|남부전구 공군]] 5여단 || || 주소 ||[[광시]] [[구이린시]] 옌산구 || || 공항 등급 ||4C || || 관할기관 ||[[남부전구|중국 남부전구]] || || 개항 ||1942년[* 1949년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이 후퇴하면서 파괴], 1959년[* 재개항], 1996년 10월 1일[* 민간부분이 폐지되고 완전히 군용으로만 운영된 시점]|| ||<-2><#802224><:>'''{{{#white 활주로}}}'''|| || 활주로 ||'''18/36 2300m 콘크리트''' || || 좌표 ||북위 25도 11분 39.8초[br]동경 110도 19분 11.1초 || || 웹사이트 ||- || ||||<#802224><:>'''{{{#white 지도}}}'''|| ||<-2>[include(틀:지도,장소=25°11′39.8″N 110°19′11.1″E,너비=100%,높이=200px)]|| == 개요 == 구이린 치펑링 공항 ( IATA 코드 : KWL ; ICAO 코드 : ZGKL )은 구이린 리자춘 공항 또는 구이린 공항 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 구이린시 얀산구 치펑진 에 위치해 있으며 구이린 시에서 약 9.7km 떨어져 있다. 공항은 1942년에 건설되었으며 항일전쟁 당시 군용공항 이었으며 [[플라잉 타이거즈]] 미국 제14공군 의 기지였다 . 1949년 국군이 구이린에서 철수하면서 공항이 파괴되었고, 그 이후 공항은 1959년 재개장하여 운영을 재개할 때까지 유휴 상태였다. 1996년 [[구이린 량장 국제공항]]이 완공 및 개항한 후 군민분리, 민항기 부분은 모두 량장공항으로 이전되었고 1996년 10월 1일부터 구이린 치펑링공항은 군용공항으로 전환되었다. 공항은 여러 번의 재건축과 확장을 거쳐 현재 2,300m의 활주로 와 1개의 유도로가 있다. == 중일전쟁 == 국민당 정부는 군용 비행장이 필요했기 때문에 리자춘 비행장을 건설했고, 건설 후 플라잉 타이거즈 미국 제14항공대가 진주했다. 항공위원회 제3측량팀이 부지의 지형, 지형 및 경계를 측량하였다. 중앙연구원 물리연구소, 중앙자원위원회 광물조사처, 광시성 건설부가 공동으로 활주로 부지 아래 용해된 동굴을 탐사하였다. 1932년 여름에 탐사 작업이 완료되었고 가을에 공항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43,000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건설했습니다. 1933년 여름 66,000명의 인부들이 공사를 계속하여 가을에 완공하였다. 길이 1,600m, 폭 50m의 진흙 자갈 활주로 1개를 건설하고, 자연 동굴을 이용하여 항공기 1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항공기 동굴을 만들었고, 대피 도로, 기름 저장고, 막사 등을 건설했다. 구이린 함락과 광복 전후로 공항은 2차례 파괴되고 2차례 복구되었다. 1949년 11월 구이린에서 후퇴하는 국민당군은 비행장을 전면 파괴했다. == 국공내전 이후 == 공산당군이 구이린을 점령한 후 공항은 유휴 상태였다. 1958년 5월, 중국 민항국은 구이린에 공항을 만들 계획이었고, 민항 광저우 관리처는 직원을 파견하여 구이린 묘당, 얼탕, 리자춘(李家村) 공항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실시하여 공항의 건설 조건과 발전 가능성 등을 비교한 후 리자춘 공항의 복구 및 개설을 확정하였다. 후속 측정 설계는 '[[대약진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지질 및 수문 탐사 및 실증이 수행되지는 않았다. 1958년 12월 9월 복구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요 공사는 구이린의 모 인민해방군 사단이 시공했으며 부속 건물은 구이린시 건축 설치 부서에서 건설하였다. 길이 1,200m, 폭 50m의 활주로, 연락로 1개, 승강장 1개, 각종 가옥 12개동 총 2,068㎡ 및 보조 수력발전시설 등을 복구하였다. 1959년 11월 12일, 시험 운항을 거쳐 개항하였다. 리자춘(李家村)공항은 1960년 2월부터 활주로 중심권 남쪽 112m, 62m 지점과 유도로, 북안전도로에서 토굴이 함몰된 채 발견되어 1961년 12월 5일 다시 활주로 북단 200m 지점, 중심선 서쪽 10m 지점에서 토굴이 함몰되어 일시 중단되었다. 1962년 2월부터 11월까지 중국 민항총국과 광저우 군구 공군은 연속적으로 인원을 파견하여 토굴 상황을 기본적으로 조사하였으며, 부지는 영구적인 공항으로서 실현 가능하나 활주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1964년 1월 공군이 리자춘(李家村) 비행장을 인수·개축 확정하면서 구이린 비행장으로 개칭하였다.1965년 여름, 공군 공병 제4본대가 개축하여 시공하였다.이듬해 말에는 주요 공사가 완료돼 공항이 문을 열었다. 1970년 2월, 구이린에 민항 기능이 회복되었다.복구된 민항구역은 활주로 동쪽에 위치하고 유도로는 활주로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활주로를 오가며 비행하기에 불리하여 같은 해 10월 공항 서쪽 중남쪽 지역에 민항구역 신설에 20여만 위안을 투자하여 계류장, 연락로 총 8,200㎡의 콘크리트를 타설 하고 가옥 150m²를 지었다. 이듬해 준공항였다. 민간 항공은 1975년 9월 새 구역으로 이전했으며 원래 구역에 있던 2,000m² 이상의 가옥은 대부분 철거되고 일부는 할인된 가격으로 상주 단위에 양도되었다. 1979년 구이린성 관광업의 부흥과 함께 민항 여객수송량이 급성장하자 민항은 380여만 위안을 투자해 터미널(대합동)과 간이대합실 3,353㎡, 시내 매표소 460㎡, 계류장 1만1000㎡, 여객초대소, 업무, 생활용 주택 총 9,100㎡, 도로, 광장, 수도시설 등을 잇따라 건설했다. 1980년 11월 20일, 여객 수송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활주로 적재 능력을 향상시키고 더 큰 항공기의 사용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활주로 개조가 시작되었다. 예산으로 880만 위안을 투자하였고 공군 공병 제4 본대가 건설을 도맡았다. 트라이던트 3B 항공기 사용 요구 사항에 따라 활주로에는 0.2m의 콘크리트가 완전히 덮이게 되고, 활주로와 연락로, 계류장, 활주로 양단 안전로 등을 보수·부분 확장했다. 이 중 계류장 면적은 81.3% 늘어난 2만9000m²가 되었다. 1981년 4월 리모델링 공사가 완료되었다. 총 53,000m³의 콘크리트가 타설되었으며 5월 1일에 인도되었습니다. 이후 유류창고, 호텔, 여객식당, 국제대합실, 각종 생산생활용 주택을 잇달아 건설하고, 여러 차례 대합실을 개조·증축했다. 1986년에는 공항 증축을 준비했으나 기존 활주로 기반 및 일부 토지 소유 문제로 실시되지 않았다. 1990년까지 공항 활주로 시설은 트라이던트, 보잉 757, Tu-154 및 기타 항공기를 이착륙할 수 있으며 계류장에는 6대의 중형 여객기를 이착륙할 수 있었고 터미널, 시내 및 오일 저장고 및 오일 하역장에는 55,000제곱미터의 생산 및 생활 시설이 있었다.